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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재문 |
날짜 : 17-09-17 19:24
조회 :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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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바람
임 재 문
바람이 분다. 세찬 바람이 분다. 콘크리트를 핥아 삼길 듯이 세차게 부는 바람! 우리는 이 바람을 귀신바람이라고 부른다. 야간 근무를 하노라면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흡사 “전설의 고향”에서나 나옴직한 귀신의 호곡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돌부리를 울리며 흙먼지를 몰고 오는 청송 바람! 초가을 찬 서리가 내리기 전부터 불어대던 청송 바람은 겨우내 끊임없이 그렇게 불어대고도 모자라서 우수가 지나고 경칩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끈질기게 불어대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해 늦가을 영농교육장에서 시커먼 먹구름을 동반하고 천둥 번개와 함께 비까지 퍼부으며 불어대던 돌풍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도대체 어디에 그렇게 많은 바람을 모아 두었다가 겨울이면 그렇게 세차게 불어 보내는 것일까?
청송 바람은 변덕이 많은 바람이다. 믿지 못할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청송 바람은 여자의 마음처럼 부는 바람이다.
잔잔하고 화창한 어느 봄날, 낚싯대를 걸머지고 물가를 찾는다. 낚싯대라고 해야 간반짜리 들어 올리는 낚싯대에 지렁이 몇 마리면 족하다.
누군가 세월을 낚는다고 했던가? 그렇다. 나도 세월을 낚기 위해 물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잔잔한 호숫가에 낚시를 드리우고 찌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앉았노라면 온갖 아름다운 생각들이 떠올라서 좋다.
그런데 내 생각의 실마리가 채 풀려나기도 전에, 찌의 움직임이 몇 번 보이기도 전에 기어이 청송 바람은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위풍당당하게 불어오는 바람이고 보면 무어라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세찬 바람에 요동을 하는 찌를 바라보며 세월을 낚으리라는 내 생각은 어느 새 사라지고 바람만 가득히 낚아 오는 꼴이 되고 마는 거였다. 그토록 잔잔하던 날씨가 바람을 몰고 올 줄이야 ... ....
청송 바람은 꿈을 짓밟는 바람이다. 청송의 푸르른 소나무들은 대들보의 꿈을 잃은 지 오래다. 고목의 자태와 축소미를 자랑하는 분재 목처럼 그렇게 앙상하게 자라 버린 야산의 소나무들, 바람에 시달리는 청송의 소나무여 !
내 고향 해남에는 무화과나무가 많다. 부모님 계신 고향집 뜰에는 앞에도 뒤에도 온통 무화과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추석 무렵에는 껍질이 벌어지도록 잘 익은 무화과의 향기가 집안 가득히 풍겨 나와 훈훈한 고향 냄새처럼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나는 고향 냄새처럼 향긋한 무화과 항기가 좋아서 고향 꿈이 담긴 무화과나무를 산 설고 물 설은 이곳 청송까지 가져와 심었다.
사무실 앞 양쪽 화단에 심어진 내 무화과나무 두 그루! 고향을 보듯이 보리라고 심어 놓은 내 무화과나무는 매서운 청송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죽어 버리면 뽑아 내버리기라도 할 것을 , 이듬해 봄이 오면 밑 둥에서 다시 새순이 돋아나와 가지에 잎이 피고, 겨울이면 또 다시 죽어가는 가련한 내 무화과나무, 나는 지금 지난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간 무화과나무 가지를 꺾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본다. 고향냄새가 난다. 향긋한 고향 냄새다.
이제 또 다시 새 봄을 맞아 내 무화과나무 밑 둥에도 새 순이 돋아나오고, 고향 꿈으로 가지에 잎이 피어날 것이겠지만, 겨울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무화과나무의 운명은 야속하기만 하다.
바람아! 청송 바람아! 외로운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내 인생의 꿈을 짓밟지나 말아다오, 무화과의 꿈이 피어나 열매가 익어 향기를 토할 때까지 말이다.
필자주
1983년 청송교도소 현 경북북부제1교도소 재임시 쓴 글입니다.
청송을 떠나와 호송으로 청송교도소를 들렀을 때 보안과 앞 화단에 무화과 나무가 있는 것을 확인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은 퇴임후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내 고향은 전남 해남인데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자라난 내가 산설고 물설은 청송에서 매서운 찬바람과 함께 초창기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요.
청송교도소에서 고향 해남을 가려면 10시간이 넘게 소요되었습니다. 거짓말이라고 하겠지요 ? 이제야 밝힐 수 있는 진실입니다.
전남 해남 출생
2007년 6월 30일 강릉교도소 복지과장 정년퇴임
한국수필작가회 창립회원,
초대 감사 초대 이사,
11대 부회장 11대 회장 역임.
수필집 "담너머 부는 바람" "사형수의 발을 씻기며" 전자책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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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7-09-18 1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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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우리 임작가님이 명문 또 한 편을 쓰셨군요. 너무 멋있어 아깝게도 단숨에 읽어 버렸네요. 나이 80대를 살다 보니 주위에 자꾸 아픈 사람이 늘어 가네요. 아주 아픈 사람이. 몸 조심하세요. 미리 미리 건강을 챙기시고요. 그리고 아름답게 늙는 사람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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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7-09-19 0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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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성철용 선생님이야 말로 아름답게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 표본이십니다. 저도 그렇게 아름답게 보내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일만 성철용 선생님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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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7-09-25 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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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주왕산이 옆에 있는 청송이 그렇게도 바람이 세차게 불었군요.
해남에서 청송은 참으로 먼거리 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남에서 청송을 오고 갈 때면 많은 사연과 애환이 있을 법 같습니다.
해남에서는 잘자라는 무화과나무가 청송에서에서는 적응을 못하군요?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 품 같은데 객지는 암만해도 낯설은 딴 세상이라 적응하려면
세월이라는 약이 투약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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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7-09-26 0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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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선생님 ! 어느덧 삼십여년이라는 세월이 갔습니다. 중앙고속도로도 없던 그시절 ! 차편도 드물어 차 기다리는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아마도 제 인생에 있어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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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7-10-07 2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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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고향 떠나 먼 타향인 청송에서 맞는 바람이야기 공감합니다.
저도 1973년, 스물 두살 나이로 단양군 의풍이라는 삼도 접경지대에서 4년을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어지간히 찬 바람을 맞았는데 지금은 그곳이 자꾸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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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7-10-09 0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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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곳 청송에서 그 바람속에서 반변천 달빛이 그립고, 그시절이 그렇게 그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이방주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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