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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희순 |
날짜 : 17-01-05 21:55
조회 :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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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내의 생일입니다. 어제 오후에 생일 케이크를 생각하다가 그 후의 스토리 구성이 탐탁지 않아 그만두었지요. 이 나이에 자질구레한 소품을 선물하기도 무엇했지만 지갑이 얇은 탓에 큰 것은 꿈을 꾸지 못했지요. 뒤 한 번 돌아보니 아내와 한솥밥을 먹은 지도 어언 40년 세월입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바둑격언처럼 챙긴 거라곤 고작 마른미역 한 움큼과 콩나물 한 봉지, 미역국에 넣을 쇠고기 한 근이었네요. 어스름에 눈 비비며 찬물에 불려놓았던 미역을 치대어 씻고 냄비에 참기름을 둘러 볶아봅니다. 연기인지 김인지 아리송할 즈음 쇠고기와 함께 더 볶아보다가 국물을 부어 한소끔 끓여내니 스스로 대견하네요. 콩나물도 무쳐보고 여름에 삶아 말려두었던 아주까리 나물도 만들어보았습니다. 요리는 그것으로 끝이지만 오직 낯선 경험이었어요.
제 어미 생신이라고 맏이가 영화표 두 장을 예매해놓았나 봅니다. 밤 아홉시를 겨냥하여 아내와 집을 나섰습니다. 주위를 둘러 흰머리 동지를 찾지는 못했지만 우리 같은 중늙은이들한테도 팝콘과 음료는 소용이 되더군요. 두 시간은 생각보다 길거든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기욤 뮈소의 원제 소설을 각색한 작품인데 저자가 영화제작을 쾌히 승낙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더군요. 느닷없이 캄보디아의 밀림이 전개되고 앙코르와트의 장관이 시선을 사로잡더니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펼쳐집니다.
2015년의 수현(김윤석)은 캄보디아 의료 봉사 활동 중 한 소녀의 생명을 구해줍니다. “소원이 있습니까?”소녀의 할아버지는 신비한 알약 10개를 수현에게 선물합니다. 그의 소원은 사랑했던 여인 연아(채서진)를 만나보는 것이었지요. 호기심에 알약을 삼킨 수현은 순간 잠에 빠져들고 다시 눈을 떴을 때, 30년 전인 1985년의 젊은 자신(변요한)과 마주하게 됩니다. 시간여행이지요. 삼십 년 후의 그는 체념어린 표정으로 과거는 흘러갔기에 돌이킬 수 없다며 운명을 이야기 하고 삼십 년 전의 젊은 그는 ‘미래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운명은 바꿀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영화는 돌고래 사육사로 일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어간 연인을 되살림으로써 그들 모두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이야기로 달려갑니다. 남자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절교를 선언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만나면 연인은 죽게 됩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여인은 슬픔에 겨워 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운명이 바뀐다한들 어찌 그 사랑마저 떠날 수 있겠어요.
얼마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스팅(The Sting)’을 만났지요. 내용이래야 신출귀몰한 사기꾼들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만 숨죽이고 있었던 고교시절의 기억들이 밤하늘의 유성처럼 긴 꼬리를 남기며 스쳐가는 거였어요. 찐빵 값과 버스비를 아껴 주말이면 시내 영화관으로 달려가던 추억이 새롭네요. 그 시절에는 영화 ‘벤허’를 보지 않고는,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빙점’과 헷세의 ‘데미안’을 읽지 않고는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지요.
‘기회’와 ‘후회’는 동의어 같기도 합니다. 농사에는 때가 있어서 씨뿌리기, 거름주기, 김매기, 물주기, 추수 등 어느 것 하나라도 때를 맞추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기 십상이지요. 그래도 기회는 다시 옵니다. 농사는 한 해만 짓고 마는 일이 아니잖아요? 삶의 궤적에 남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 듯합니다. 혹은 아물지라도 그 상흔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가봅니다. 그러나 시련도 고난도 피하고 싶었던 일들도 어쩌면 내 인생에 소중한 기회였을 거라는 후회가 가슴을 사무치게 합니다. 나는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것들이 기회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쁜 일도 기회였다는 것을. 지성으로 예배에 참석했던 소년시절에 플래시를 도둑맞은 일도 내 신앙을 반석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을. 지나간 세월 속에서 내게 찾아왔던 기회들은 하늘이 내려준 은혜이고 사랑이었던 것을 나는 깨닫지 못했군요. 한때의 좌절과 슬픔도 기회였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네요.
즐거웠던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나는 통속의 거리에서 잠시 ‘과거는 흘러갔다’를 흥얼거리다가 살아왔던 날들의 아쉬움과 미련을 내보내기로 작정합니다. 희망이 숨 쉬지 않는 낡은 그리움도 땅에 묻기로 합니다.
(2017.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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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7-01-07 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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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순 선생님 ! 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7년은 또 얼마나 우리에게 희망을 노래하게 될런지요. 저도 아내의 생일날이 오면 죄인이 됩니다. 흡족하게 못 챙겨주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세월은 자꾸자꾸 흘러흘러 갑니다. 올해는 푼돈이라도 모았다가 아내의 생일을 챙겨 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희순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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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7-01-15 0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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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반갑습니다.
누구나 지난 날에 대한 크고 작은 후회와 연민을 지니고 살아가지 않을까싶습니다.
내일을 설계하지 않는 후회와 그 속에 희망이 숨쉬고 있지 않은 그리움은 미련없이 내보내야 할 쓸모없는 짐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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