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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희순 |
날짜 : 16-01-27 14:51
조회 :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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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던 붕어낚시였는데 조과는 ‘빵 마리’였다. 물속 어디쯤에 붕어들이 모여 낄낄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요즘 붕어들은 지능이 꽤 높아진 게 분명하다. 큰 기대를 한 출조는 아니었지만 뜨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말괄량이 길들이기’나 한 번 더 읽을 걸 그랬다.
소년시절에는 캔자스의 소녀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올라간 집과 함께 떠나는 모험의 세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수업시간 내내 책상 밑으로 몰래 만화책만 보다가 발각되어 열권도 넘는 만화책을 몰수당한 적도 있었다. 김종래의 “율리시즈”, 이근철의 “조국을 등진 소년”, 박기당의 “요술 붓”, 김경언의 “모래알 전우”가 아직도 소년의 기억을 밝혀 주고 있다. 자정만 되면 온몸에 붕대를 감은 여자가 괘종시계 속에서 튀어나오는 “시계낭자”는 겨울밤의 오금을 저리게 하고 방광을 괴롭혔다.
007시리즈나 “괴도 루팡”, 코난 도일의 세계는 또 얼마나 흥미진진했던가. 청장년시절에는 무협소설에 넋을 잃었다. 섹스피어의 4대 비극이나 귀에 익은 세계명작은 양념으로 읽었다. 동네 무협지 서점을 내 집 드나들 듯 하였고 신간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하룻밤에 대여섯 권은 다반사였으니 내 손때가 묻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였다. 한 질을 배 밑에 깔고 한 권 씩 윗목으로 밀쳐내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바둑에 심취했을 적엔 바둑 책을 스무 권 쯤, 명리학에 빠졌던 시절에는 소위 ‘필독서’ 열서너 권을 독파하기도 했다. “방언사전 여수 편”을 집필하기 위해 새우리말 큰 사전과 겨레말 갈래 큰사전, 국어대사전, 한국방언사전을 낱낱이 검색했다. 일만 쪽이 넘는 분량이었지 싶다. 좌우 2.0의 시력이 1.0으로 결딴나는 무리수였다. 지금은 노안이 되어 웬만한 활자도 돋보기를 써야 읽을 수가 있다. 그나마 한 시간이면 눈이 지치고 마니 책에 먼지가 쌓여간다.
모처럼 끈기를 발휘하여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 주오”를 뗐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는 또 산기슭에서 멈춰버렸다. 갈색으로 변한 “팡세”는 크리스천 파스칼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한 구절이 건망증을 시험할 뿐이다. 전쟁과 평화, 닥터 지바고, 죄와 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폭풍의 언덕, 분노의 포도, 파우스트, 몬테크리스토백작, 데미안, 유리알 유희, 안나카레니나, 삼국지, 초한지, 서유기 등등 닥치는 대로 읽었었다. 돌이켜보니 그나마 한창때의 이야기이다. 중년이후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부터는 책이 점점 멀어져갔다.
“독서의 기술”이 말하는 독서를 하려고 애쓰지만 다섯 장을 넘기기도 전에 없던 잠이 어디서 그렇게 몰려오는지 모르겠다. 책을 놓는 순간 잠이 사라져버리니 스스로 가소롭다. 그래도 내 수준보다는 차원이 높은 책을 읽자고 최면을 걸어본다. 저자의 지적수준과 같아지거나 더 심오해져야 하는 것, 독서의 가치이고 목적이니까. 내가 천착하는 경서는 성경이다. 공자는 주역을 위편삼절토록 탐독했다지만 나는 평생을 성경 안으로 걸어갈 것이다.
자연을 읽는 것도 위대한 독서이다. 여행도 독서이고 붕어낚시도 독서이다.
볼품없는 낚시 실력으로 월척을 꿈꾸는 조사의 발길을 유혹하는 밤이다. 불후의 명작을 건지기 위해 밤낚시에 나섰다. 고소한 냄새가 호수 구석구석의 집집에 기별을 넣어줄 특제 떡밥을 쓰기로 했다. 물 반, 고기 반이라는 소문대로 수많은 낱말과 관형구, 온갖 성어와 경구가 노트로 몰려들었다. 잉어처럼 누런 녀석도 있고 노회한 월척도 보인다. 나는 기념비로 세워질 조과를 그리며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녀석들은 입술과 꼬리로 미끼를 희롱할 뿐 마음을 열지 않는다. 호기롭던 떡밥은 조금씩 분해되어 안개처럼 흩어지고 급기야 내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나는 민망하여 얼른 빈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제목을 ‘지렁이’로 바꾸어 유인해 본다. 이상도 하다. 눈 먼 고기가 아닌데 데꺽 걸려들었다. 두세 시간 만에 준척을 건져 올린 것이다. 녀석은 등에 문신을 하고 있었다. 월척도 아니 되는 주제에 문신이라! 생각해보니 나도 점찍어두고 즐겨 쓰는 ‘문자’가 있었다. 붕어 등의 문신은 과연 문자였다. 녀석은 혀는 짧은데 침은 멀리 뱉고 싶어 하는 내 속을 꿰뚫고 있었다.
“월척이라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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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16-01-27 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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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척이라고 전해라”
"나는 아직 월척을 잡은 적이 없다고 전해라"
ㅎㅎㅎㅎㅎㅎ~~~~!
이희순 선생님, 재미있는 글...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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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6-01-29 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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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호탕하신 댓글을 뵈오니 평안하심에 기쁨이 찾아옵니다
바보같은 월척이 낚시에 걸려 제 앞으로 달려오는 바람에 손쉽게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글밭에서야 그런 행운이 있을 리 있겠습니까
실력은 뻔하지만 그래도 미끼라도 자주 꿰어 던져야 그나마 희망이 있지 않겠는지요~~
선생님, 격려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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