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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4-12-21 17:21
조회 :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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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밖을 벗어난 힘겨운 삶들
임병식
돈 안들이면서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운동 중에서는 걷기만한 것이 없다고 해서 먼 거리는 아니지만 동네 뒤 오솔길을 빼먹지 않고 다닌다. 이 길은 경사도 없는 편이고 인적도 드물어서 좋다. 가끔 차량이 한 대씩 다니지만 소음을 일으키는 정도는 아니다.
다녀오는 거리는 사 오 십분 정도. 이 곳을 나는 주택에 살다가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온 이후 십년을 넘게 변함없이 다니고 있다. 그런지라 주변에 있는 나무는 물론 길섶에 박힌 돌멩이 하나까지도 훤히 꿰뚫고 있다.
나는 이 길에 나름대로 공을 많이 들여왔다. 해마다 주변에 꽃씨를 뿌려서 아름답게 꽃길을 조성했다. 그런 과정에서 밭주인의 횡포로 꽃나무가 뽑혀나가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꽃길로서의 명성도 얻고 있다.
이는 내가 산책하면서 틈틈이 조성한 것이다. 그만큼 애정도 간다. 이 산책로를 걷노라면 바라보는 시야너머로 무수한 전경이 어른거린다. 가령 사계절의 변화로 보면 봄에 유채가 심어져 있던 곳은 가을에 고구마가 자라고, 여름에 옥수수가 자라던 밭은 수확을 하고나서 겨우내 빈터로 있다.
또다른 곳은 여름내 토란이 자라더니 지금은 파릇한 보리밭으로 바뀌어 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다. 어느 주택앞에 세워진 제주도에서 가져다놓은 것이 분명한 돌하루방 위에는 해를 바꾸어 한때 호랑나비가 앉아있더니 청개구리가 올라앉고 지금은 어디서 날아와 걸쳤는지 비닐조각이 날아와 이마에 상처라도 난 듯 데일밴드처럼 찰썩붙어있다.
그러고보니 그 집을 지으면서 마당의 돌을 골라내고 호미를 들고서는 꽃나무를 심는등 바지런을 떨던 주인도 어지간히 물린 것 같다. 지금은 때가 때인지라 마당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미쳐 치우지 못한 낙엽만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오늘은 이 산책로를 걸으며 유독 한적함을 느꼈다. 날씨가 추우니 다니는 사람이 드문 것은 당연한데, 그래서만이 아닌 것 같다. 해서 왜 그럴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생각하니 오목눈이가 생각난다. 모여있는 주택을 벗어나 후미진 쪽으로 탱자나무가 우거져있는데 그곳은 오목눈이 집합소이다. 수십마리가 한데 모여서 재잘대며 노는데 이즘 행방이 묘연하다. 그것이 생각난 것이다.
어디로 간 것일까. 궁금한 생각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안위로 생각이 번져간다. 겨울철이 되어 먹이 구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어디서 먹이를 구할까. 엊그제는 들고양이가 앙상한 몰골을 내다버린 쓰레기 봉투를 물어찢고서는 뒤지는 것을 보았는데 그 새들도 쫄쫄 굶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생명있는 것들은 나름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실험해 본적이 있다. 험상궂게 생긴 송충이를 잡아서는 땅바닥에 놓고선 나뭇가지를 꺾어 진로를 방해하니 요리저리 머리를 내저으며 피해가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머리를 살짝 가격하니 엄살을 부리며 몸을 움츠리더니 죽는시늉을 하고 꿈쩍을 하지 않았다. 나름의 위기대처와 생존본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목눈이도 꿂주려가면서 어떻든 살아남지 않을까. 제 놈이 멍청하여 남의 뻐꾸기새끼를 길러주긴 하지만 나름의 지혜를 발휘하지 않을까. 녀석들이 한사코 가시 많은 탱자나무속에 터잡은 것도 천적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 아닌가.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면 이 엄혹한 계절에 힘겹게 사는 사람들을 더러 본다. 산책을 하면서 나는 어느 할머니가 끌어안고 있는 고구마 한 봉지를 샀다. 여느 때 같으면 품종을 따져서 호박고구마를 고집하여 사왔지만 그 여하는 묻지 않았다.
영하의 추위에 입성도 허술한 채로 앉아서 덜덜 떨면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한사람 사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보면서 무슨 적선을 하자는건 아니지만 나마져도 그냥 지나쳐버리면 안될 것 같아 다가섰다.
지불한 고구마값 오천원이 무슨 큰 도움이 될까마는 이 추위에 그래도 얼마간 물건을 팔고 갔다는 위로를 안겨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게끔 만든 것은 아마도 눈 밖을 벗어나 어딘가 움츠리고 있을 오목눈이의 안부가 걱정돼서인지도 몰랐다.
추운 겨울의 풍경. 엄동설한을 넘기는 힘든 모습들은 사람이나 새들이나 다르지 않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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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철 |
14-12-21 1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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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보이는 수필입니다. 오목눈이도 임선생님의 걱정에 힘입어 좋은 보금자리를 얻어 잘살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마 파는 할머니도 혹시 임선생님 같은 분이 사주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믿음으로 살고 있는것처럼. 오목눈이도 누군가 그런 보살핌을 하는 사람이 있을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동안 잘 버티다가 좋은 보금자리를 얻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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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12-21 1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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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밀어닥친 혹한은 남녘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춥다보니 새들도 자취를 감추었고, 입성이 허술한 노파들이 푼돈을 마련하여 자판을 열고서 떨고있는 모습들이 눈에 많이 밟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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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4-12-21 1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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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이 곳 의왕시 부곡동은 날마다 시골장이 섭니다. 그러면 시골 할머니들이 풋호박이나 미나리 움쑥 냉이 등 조금씩 내어 놓고 앉아 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측은하게 생각했었는데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그런 생각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사실을 알고 보면 그 할머니들은 이 곳 토박이로 재산이 수억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단지 오랫동안 해 온 일이기 때문에 소일거리로 계속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간혹 지나가다 보면 소줏잔을 기울이는 것을 보는데 할머니들은 그런 재미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그냥 쉬어도 좋은데 소일거리를 찾고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임병식 선생님 !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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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12-21 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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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자판을 열고 있는 노파들은 그런것 같지 않습니다. 덜덜 떨면서 한데서 물건을 파는데 너무나 안타까운것 같습니다. 시골노인은 몇푼을 벌자고 고생을 하는데 본을 보여야할 지도층의 눈길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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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만성철용 |
14-12-22 0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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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가난한 노점 상인의 물건을 사오다가 마누라님께 잔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한번은 지하철 통로에서 노파의 떡을 팔아 주었는데 그게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쉰 것이더군요. 이런 경우 적선의 마음이 도둑 맞은 것 같아 섭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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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12-22 0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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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데서 벌벌떨며 생업을 이어가는 노파들에게 이왕에 사먹을 먹거리라면 손을 내밀어 팔아주는것도 좋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저는 집사람이 아픈지 오래되어 주부생활을 해오는터라 부식거리는 노점상을 이용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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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4-12-23 2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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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산책로를 거니시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시는군요.
우리가 날마다 대하는 자연이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또 바뀌고 있는데
생각없이 지나면 그냥 의미 없는 것들이 되고 말지요.
선생님처럼 관심과 사랑으로 바라보니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의 의미로 다가오게 되는군요.
선생님과 함게 하는 산책길 저까지 따뜻하고 고요해 지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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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12-24 0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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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눈여겨 보지않는 것을 보는 자세로 글씨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을 살피고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됩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마음은 오글어 들지만 생각은 더 분망해지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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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순 |
14-12-24 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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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도 따뜻해질 수 있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하여 배웁니다.
인정이 메마른 날은 그저 어느 한 날이요, 온정이 베풀어진 어느날은 '날씨'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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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4-12-24 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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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세상이 조금은 나아지고 인정도 훈훈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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