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오늘 방문자수 |
    |
| 어제 방문자수 |
  |
| 최고 방문자수 |
|
| 방문자수 누계 |
|
|
|
|
|
|
|
|
|
|
|
|
|
|
| 글쓴이 : 한동희 |
날짜 : 15-01-31 09:31
조회 : 1852
|
|
|
|
수다와 토론사이
한동희
수다가 늘었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수다'가 좋다지만 내가 이처럼 수다스런 여자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한동안 별반 말이 없는 남자분과 가까이 지낸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면 몇 시간 말없이 앉아 있어도 서로의 교감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을 테지만, 그런 사이가 아니고 보면 어느 한쪽이 입을 열어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판다고, 침묵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내 쪽이 이 말 저 말 많은 말을 하게 된다. 지루함을 덜어보려고 객쩍은 말도 하게 되는데, 그런 날 집에 돌아와 생각하면 실속도 없이 수다스러웠던 내 자신이 못 견디게 싫었다.
헌데 이즈음, 서로 맞장구를 치며 수다를 떨어도 담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질 않을 '수다 클럽'(자칭)이 생겨 신이 난다. 명예나 권력은 손에 쥔 모래처럼 언젠가는 다 빠져나가고 남는 건 친구뿐이라는데, 나이 먹어가며 마음 놓고 수다를 떨어도 좋을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오늘도 그들과 만나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같은 길을 걸어오며 신뢰를 쌓아온 분들이다. 그간에는 체면을 지키며 겉 궁합에 충실했지만, 세상 일이 이해관계로 얽혀 복잡하고, 주변의 인연들이 꼬이고 끊기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에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그러한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도 안타까운데 직접 관련된 사람이라면 더욱 복장 터질 일이다. 누군가에게 하소연도 하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여자들의 수다는 흔히 자기 자랑으로 시작되지만, 남의 흉을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다. 그것도 내가 하기 거북한 말을 곁에서 대신해 주면 그렇게 고맙고 통쾌할 수가 없다. 남의 칭찬을 하라면 한 시간도 넘기기 어렵지만, 남의 흉을 보라 하면 서 너 시간도 지루하지 않은 것이 수다의 매력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남에게 흠집을 내면 안 될 일이다. 아무리 믿는 사이라 해도 수다에도 원칙은 있어야 한다. 사실에 근거한 수다를 떨어야 수다쟁이들 간에도 신뢰를 잃지 않는다. 남의 일에 열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내 얘기를 저렇게 하겠지 하는 경계심이 생겨 좀처럼 가까이 가기 힘들다. 모처럼 마음을 열고 속궁합을 맞춰 가는데 신뢰가 깨지면 더 이상의 진전은 없을 것이다. 겉 궁합만으로 살아간다면 무늬는 좋지만 마음은 쓸쓸하지 않을까 싶다.
헌데, 나의 수다가 지나친 걸까? 불현 듯 어느 책에서 본 괴테의 말이 떠오른다.
괴테가 집안에 모인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 거리란 대개 예술과 학문에 관한 것뿐이었다. 어쩌다가 화제가 빗나가 남의 비평이나 한담이 시작되면 괴테는 눈을 무섭게 뜨고 큰소리로 호통을 치곤했다. "그런 얘기는 자네들 집에서 쓸어 모으게. 우리 집에까지 가져오지 말구."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괴테가 들었다면 모두 쓰레기 같은 얘기만 늘어놓은 셈이 된다. 수다의 원칙을 세워놓고 이따금 콧속에 바람 좀 넣어주겠다는데, 난데없이 괴테 아저씨가 뛰어들어 나를 주눅 들게 한다.
이쯤에서 '수다'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다. 사전에는 '쓸데없는 말 수가 많음. 잔소리가 많음'으로 적혀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수다클럽 회원이 되라고 하는 것은 실례일 것 같다. 우리들의 모임을 '수다클럽'이 아닌 'ㅇㅇ 토론회'정도로 명칭을 바꾼다면 괴테도 눈감아 줄려나?...
토론이란, ' 어떤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각각 자기의 의견을 말하며 좋은 결론을 얻으려고 하는 논의'.라고 한다. 편안한 옷 같은 수다클럽에 앉아 있다가 토론회로 격상 하고보니, 웬지 제복 차림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는 것 같아 딱딱한 느낌이 든다. 나도 공식석상에서 토론을 해 봤지만, 애정 어린 비판에도 공격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무리도 있게 마련이어서 좋은 결론을 얻기 힘들었던 일도 있었다. 우리도 학문과 예술을 이야기 하며, 토론에서 얻지 못한 결론을 수다로 풀어보고 싶은데, 수다와 토론 사이의 적절한 명칭은 없는 것일까. 오늘의 이야기는 진흙탕 같은 세상에 발 담그고 있지만 연꽃처럼 피어오르고 싶은 소망이 담겨 있으니 쓸데없는 말이나 잔소리는 아닐 터이다.
그렇다고 수다가 여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요즈음 텔레비전에 패널들이 나와 토론에 열을 올리는 프로를 흥미 있게 보는데, 거기에는 남자들의 수다가 곁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재치와 유머가 있는 수다는 스트레스 해소에 더없는 묘약이라 하겠다.
수다는 통쾌하지만 허탈하고, 토론에는 의제는 있지만 정답을 얻기란 쉽지 않은 것.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풍진 세상, 모든 걸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아가기엔 너무 고달프기에 오늘도 사람들은 사람을 찾아 나선다. 수다와 토론 사이를 쉬임없이 오간다.
(2015. 펜문학 1,2월호)
|
|
| 강승택 |
15-01-31 21:39 |
 |
|
사는 게 팍팍할 때 적당한 '수다'는 생활의 활력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누구에겐가 상처주지 않는 유쾌한 내용이라면 더욱 좋겠지요. 잘 읽고 갑니다. 한 선생님~
|
|
|
|
| 임재문 |
15-02-01 02:09 |
|
저는 수다보다는 추억담이 더 매력을 느낍니다. 흰눈이 펑펑 내리는 날 유리창 밖을 내다보며
마시는 한 잔의 소주나 차 한잔 얼마나 낭만적일까요? 이제 흰눈도 그 힘을 잃어 새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겠지요. 감사합니다. 한동희 선생님 !
|
|
|
|
| 이방주 |
15-02-13 10:25 |
|
한동희 선생님
옛날에는 밥상 앞에서 말을 하면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밥을 함께 먹으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만큼 즐거운 일은 없지요. 정도 더 들고요.
물론 토론도 필요하지만 수다도 활력소를 준다고 생각해요. 남의 흉보는 이야기만 아니라면.....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