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論

林 和

몇 해 전 어느 문예잡지의 좌담회에서 수필에 대한 이야기를 교환한 일이 있었다.

자세히 기억치는 못하나, 이야기의 초점은 아마 수필도 과연 다른 문학, 이를테면 시나 소설과 같이 하나의 독립한 장르로서 취급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던 듯싶다.

그때 이런 제목이 골라진 것은 수필이 차차 성왕해 감으로 문학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쓰는데다가 다분(多分)의 정력을 경주해서 족한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문제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그런데 당시로부터 벌써 5,6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즈음 와서는 잡지에는 물론 신문에까지 수필이 여간 많이 실리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에 비하면 수필의 성질도 꽤 변했고, 노산(鷺山)같은 이는 이런 종류의 단행본-만일 기행도 수필 속에 넣는다면-까지를 수삼종(數三種)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만을 가지고 우리 문단에 수필이 새로운 지보(地步)를 요구할 만큼 성장했다든가, 수필을 논하는 게 이미 불가결의 과제가 되었다든가 하면 물론 하나의 성급한 과장임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헌데 도대체 수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을 가르쳐 이름이냐 하면 우리는 곧 이것이다 하고 즉석에서 집어 보일만 한 그런 무엇을 가지고 있지 못함이 또한 수필의 수필다운 곳이 아닌가 한다.

항용 일기체의 문장이나 혹은 서한체의 글이나 또는 기행, 하다못해 무제목의 그야말로 쇼킹한 단편까지도 모두 수필류라 부를 수 있지 않은가 한다.

그런데 이런 문장 가운데 통틀어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은, 쓴 사람이 어떤 특정한 장르로서의 스타일의 규범을 받지 않고, 혹은 완성을 목적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이 제 생각이나 사물을 기술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논문이나 일반 저술과는 달라 어딘지 문학적인 성격을 갖추고 있는 게 우리에겐 소위 수필이라고 느껴진다. 따라서 장르로서의 문학과 논문이나 저술의 중간에 수필이란 것의 위치가 있다 볼 수 있다.

여기서 논문이나 저술이라는 것은 물론 과학적인 개념의 구사나 논리적 조작에 의한 분석이나 종합, 혹은 부단한 체계화에의 노력으로 성격화 되어 있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수필이란 본시 분석이나 체계화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수시(隨時) 수처(隨處)하여 쓰여지는 것으로 스타일에 있어서도 논리적 조작의 기술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소설, 시, 희곡처럼 소위 장르로서의 문학과 같이 성격(인간의)이나 사건이나 줄거리나 그것들이 서로 얽어놓는 고유한 구조의 규범을 지킬 필요도 없는 것이다.

고유한 구조! 장르로서의 문학은 제각기 다 제재만 있는 구조의 법칙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드라머와 시와 소설은 동일한 대상을 취급하면서도 이 구조의 각이성(各異性) 때문에 독자의 영역으로 분립되는 것이다.

그러면 수필이 고유한 구조도 없고 논문이나 저작과 같이 개념이나 범주도 없다면 어떤 특장(特長) 때문에 눈에 뜨이는가? 먼저 나는 하나의 규범으로서의 특성을 찾기 어려운데, 수필의 수필다운 점이 있다 하였다.

그것은 수필이 논문처럼 조작의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데서와 장르로서의 문학처럼 고유한 구조를 갖지 않은 데서 기인하는 것이나, 사물이나 생각을 형상적인 방법으로 이야기 한다는 데 과학이나 논문과 결정적으로 분리하는 대신 문학과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이야기되는 형식에 있어서 아무래도 과학과 혼동 될 수 없는 대신 현저히 소설, 시, 희곡에 가깝다.

그러면 우선 우리는 수필이란 고유한 구조를 갖지 않은 문학, 바꾸어 말하면 장르로서의 문학 이외의 아직도 존재 가능한 문학의 한양식이란 규정을 내려 둘 수가 있다.

그러면 문학이려면 불가불 가지지 아니할 수 없는 장르 즉 소설, 시 , 희곡 등의 고유한 구조를 갖지 않은 어떤 종류의 문학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하나의 문제다.

하기는 시나리오 같은 것도 최근에 와서는 콘티뉴티와 구별하여 시나리오 문학(즉, 새 장르로서)으로 정립하려는 경향도 있다. 그렇지만 시나리오가 문학장르로서 독립될 수 없다는 이유는 희곡과 많은 공통성이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시나리오나 희곡은 소설이나 시처럼 제 자신가운데 제 자신의 전부를 실현할 기능과 수단을 겸비해 가지고 있지 못하는 때문이다. 극장이나 필름이 시나리오나 희곡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시나리오 같은 것은 희곡과 비슷하게 고유한 구조를 가질 수 있고, 장르로서 확립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필은 한 가지 무학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기존, 미존 여하를 물론하고 어떤 장르에도 편입될 수 없고, 장르로서의 문학으로도 확립될 수는 없다.

이 점이 수필이 여지껏 문학의 여러 장르와 더불어 문학적 저술의 일종으로 존속해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한 시대의 문학의 확고한 주류를 이루지 못한 이유다.

또한 이 점이 여지껏 여러 사람이 수필을 완전한 의미의 문학이라고 평가하기를 꺼린 점이다.

그러면 수필이란 불완전한 의미에서는 어떻게 해서 문학일 수 있느냐, 완전하든 불완전하든 간에 문학이기 위하여는 장르로서의 특징과 구조의 규범을 형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장르와 <구조>에 있어서만 문학은 일절의 비문학과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장르>와 <구조>은 문학의 형식적인 축면에 불과하다.

요점은 내용에, 즉 사상에 잇다. 다시 말하면, 문학이 다른 비문학, 이를테면 과학 같은 것과 구별되는 것은 이 사상의 부분에서였다.

그러나 과학의 사상과 문학의 사상, 그 자체가 근본에서 질을 달리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고, 사상의 형성과 파악의 방법에 있어 문학과 비문학이 다르다.

문학은 사상을 형상의 직관으로서 파악하고 형상의 윤리로서 형성해 간다.

문학에 있어 논리는 그것이 대단히 중용(重用)되는 때일지라도 윤리에 종속되는 것이고 모든 논리적인 것은 형상적인 것으로 번역됨이 마땅하다. 그러나 비문학은 이것과 순차가 정히 반대다. 여하히 윤리나 형상성이 농후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논리와 체계에 종속되고 또한 종속된 전자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비문학이 냉혈의 객관자이라면 문학은 피가 흐르는 주관자인 감(感)이 있다.

이런 점이 문학을 주관의 표현이라 하고, 비문학을 객관의 인식이라 하는 등의 속설과 문학만을 정서의 문자라고 생각하는 치졸한 견해가 생기게 되는 근거이다.

그러나 논리의 객관성과 윤리의 주관성은 진실한 것이 표현되는 두 가지의 다른 형식에 불과하다.

과학적인 진리에 대하야 인간적 윤리적 진실! 이 한점의 차이에 서서 우리는 문학과 과학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개념은 자연 논리를 통하여 체계가 되므로 진리란 것으로 꼭 맺는다면 형상은 생활을 통하여 윤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여기서 윤리란 것은 물론 모랄이란 외어(外語)의 가탁(假托)이다.

다시 돌이켜 수필이란 것의 문학이 되는 이유를 생각할 때, 이 모랄이란 것의 중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대성뿐만 아니라 그 형식이 비문학적인데 - (즉 문학적인 불완전성!) 불구하고 그것이 사상으로서 전연 모랄적인데 불가불 문학적인 외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즉 작품 가운데 인간처럼, 작가 몽테뉴는 세상을 논리의 껍질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에세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수필은 체계나 법식(法式)을 좇아 무엇을 교설하는 것이 아니라, 사색이나 생활의 진솔한 개성적인 기록임을 요하는 것이다.

이 개성적인 점, 일신상의 각도에서 모든 것이 이야기되는 친밀성, 육박미(肉迫味)는 수필이 문학인 때문에 생기는 별다른 맛이다.

그러나 다 같이 사상을 모랄로서 표현하는 데도 수필과 장르로서의 문학은 대단한 차이가 있다.

수필이 모랄리티를 갖는 것은 쓰는 사람 자신이 직접 제 일신상의 각도에서 사물을 보고 이야기하는 때문에 필자의 모랄이란 것은 대개 일인칭의 방법으로 표현된다.

즉 형상은 필자 자신이다.

그렇지만 장르로서의 문학은 본래에 있어선(예외가 적지 않으나) 작자가 직접 제 일신(一身)을 작품 속에 노골적으로 내어 놓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개개의 형상과 그것들이 산 인간처럼 서로 관계하는 형상들의 생활을 통하여 간접으로 작품은 모랄을 표현한다.

여기에는 형상의 독립성이 있고 독자는 이 형상들과 그들의 생활 관계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단지 어떤 최후의 일점에서 책을 덮어 둔 한참 뒤에야 작가의 모랄이란 것을 암시로써 향수할 따름이다. 즉 개성으로 생존하고 있는 작자 자신의 개성을 탈각(脫却)함으로써 개성이 표현된다.

이것에 수필의 또 하나의 특징이 나타난다.

즉 수필은 형상이나 구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직접 일상의 현실을 그대로 가지고 모랄리티를 표시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다시 말하면 가장 비시적(非詩的)인 가장 산문적인 예술이다.

요컨대 사소한 우스꽝스러운 일상사를 통하여 심원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능이 수필에는 요구된다. 이것은 문학의 가장 어려운 방법의 하나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수필을 대단히 쉬운 문학적 표현의 양식이라고 생각하는 속견과 결별하지 않을 수 없다.

참말 좋은 수필은 일상의 지지한 사소사(些少事)를 사상의 높이에까지 고양하고, 마치 거목의 하나하나의 잎사귀가 강하고 신선한 생명의 표적이듯이 일상사가 모두 작자가 가진 높은 사상 순량(純良)한 모랄리티의 충만한 표현으로서의 가치를 품어야 한다.

이 점에서 교묘한 수필과 훌륭한 수필이 구별된다.

일상사를 찬찬히 잘 기술하는 것은 교묘한 수필일지는 모르나 사상의 깊이가 없이는 훌륭한 수필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작가의 사상이 도그마에서 교양으로 혈육 속에 용해되고 교양은 그 사람의 모든 생활과 감정의 세부에까지 침투하고 그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를 통하여 여유 있는 자유로운 한 개인성으로서의 모랄로 작용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과학자의 수필을 예로 든대도, 그 사람이 제 과학의 방법을 그대로 척도삼아 현실을 맞추어 간다는 수필의 가치는 제로다.

과학이 작자 개인의 한 인성으로 생활세계의 모든 것을 개성적으로 구별하는 자유로운 모랄로서 원숙될 때, 그의 붓끝은 하잘 것 없는 일상세계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신선한 시각에서 보게 된다.

즉 개인이 아니고는 보지 못할 발견의 새로움을 독자에게 전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이란 과학이나 사상의 견고함이나 세계의 정연함으로 일상세계를 처리하는 데서 생기는 문학적 미감(美感)이 아니라, 그 사상이나 과학이 진실로 그 일개인의 것으로 용해되었을 때 수필은 미려한 문학이 된다.

수필의 미는 요약하면 만인이 다 같이 보고 느끼는 일상 세계 가운데서 투철한 개인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의 자유로운 정신활동이 초래하는 소산이다.

그러므로 사상이 개성의 모랄이란 세계까지 충만되지 못하면 정작 좋은 수필은 쓰여지지 않는다.

때로 우리는 어느 작가가 작품을 쓰면 그리 흉하지 않은 것을 쓰면서도 한번 수필에 붓을 들면 말이 아닌 소리를 펼쳐 놓는 예를 볼 수가 있다.

물론 기교로서 그런 작가가 수필에 능하지 못한 때도 있을 수 있는 것이나, 정작은 그의 사상이 그 한 개인의 자유로운 정신활동의 높이에까지도 달하지 못한 증거일 때가 많다.

작품이란 어느 의미에서는 작자의 생각의 불철저나 미숙을 가릴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일상의 사소사를 집어다가 직접 제 사상으로 찬연한 생명을 부어넣는 곤란한 사업(이것은 수필의 중요한 성격의 일면일 뿐 아니라 예술의 결정적 요소다)에 비하여 작품의 구조에 의하여 매개된다는 이로운 조건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직접 사물을 제 사상으로 여과해 낸다는 것보다 작품을 통하여 그 일을 해낸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 같으나, 그러나 작품의 구조나 성격형성의 원리 등은 보편적인 이미 만들어져 있는 어떤 규범으로써 작자의 노력을 덜어주는 측면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타인의 방법을 가지고 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혹은 남도 다 널리 쓰는 규범으로 제 생각을 표현해 가기 때문에 사상의 도그마로서 생경미(生硬味)가 가리워질 수가 있다.

물론 이것은 최량(最良)의 작품에 적용될 이야기는 아니다. 작품이란 것의 구조상 성능이 다수인의 공유재산인 반면(半面)이 있다.

구조-그것은 바로 형식의 한계 법칙성, 합리성인 때문이다.

그러나 수필은 구조를 가지지 않은 까닭으로 형식의 어떤 법칙이나 합리성이 없고, 따라서 타인이 만들어 놓은 어떤 규범을 이용하여 사물에다 제 생각을 접합시킬 수가 없다. 수필은 아무 매개물 없이 직접으로 현실과 사상이 융합되어야 한다.

따라서 실로 미미하고 사소한 일상사가 전혀 개성의 강한 정신의 힘으로 엄청난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이것은 사상이 도그마로서가 아니라, 실로 개인의 모든 부면(部面) 가운데 침투하고 정서, 감정생활의 귀퉁이에까지 충만했을 대, 다시 말하면 원만한 교양으로서 그 사람의 일신 가운데 용해되어 있을 때 비로소 될 수 있는 일이다.

한 사상이란 항상 이러한 것이다. 즉 개인의 자유로운 정신이 모랄로서 정착되었을 때 견고하고 영구히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상이 현실 속에 굳세게 발을 붙이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일개인에게 있어 사상과 현실과의 통일과 조화란 바로 이 좋은 모랄의 형성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좋은 생각만으로도 쓰여지는 것이 아니며, 명석한 관찰안(觀察眼)을 가져야 하며, 또한 좋은 관찰안 뿐이 아니라, 좋은 사상을 가져야 쓰여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볼 때 과거의 경향문학(傾向文學)의 수필이 명석한 눈을 채 갖지 못 한 사상의 언어였다면, 순문학(純文學)의 수필이란 단지 눈으로 쓴 글이지, 마음이 쓰는 글이 아니었다고 말 할 수가 있다.

마음과 눈의 조화, 높은 정도의 융합이 없는데, 좋은 수필을 기대할 수 없고, 그러므로 자연스러웠다 할 수 없다. 이것이 조선 수필의 성격이 아닐까?

교양은 사회적으로는 풍속으로 표현되고, 개인에 있어서는 취미로 나타나는데, 돌이켜 우리 문단의 수필을 다시 이런 시각에 비추어 보면, 경향문학자의 것들은 아직 취미에까지 미치지 못한 생경한 관념의 조작이었고, 순문학자의 그것은 반대로 취미만의(사상으로서의 중핵이 없는) 술회였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취미란 것은 근대화되지 않는 즉 현대정신을 통하여 현대문화로서의 교양이 되어진 현대취미 그것이 아니고, 전대의 소위 동양취미 그것이었다.

노산 같은 이는 물론 그 외에도 논문이나 소설에선 제법 현대인이면서 수필을 쓰면 으레히 동양취미를 발휘하는 것으로 예술가 연(然)하는(교양과 취미와의 불일치?) 시로 적지 않은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것은 이 까닭이다.

이밖의 종류의 수필도 있지 않느냐 할지 모르나, 그것은 우리가 수필로서 논하기엔 상기의 종류의 글과 견주기 어려운 것들이다.

현대적이 의미의 사상(개인에 있어선 교양)과 취미의 조화가 생기기 전엔 우선 조선에서 좋은 수필은 읽기 어려우리라는 게 나의 수필론의 마감이 아닌가 한다. (1938. 3)

김윤식 편저『哀愁의 美, 頹廢의 美』도서출판 나남,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