皮千得의 創作意識 2

元亨甲(문학평론가. 전한성대 총장)

皮千得의 스승들, 초상들

사람의 성장과정에는 대개 삶을 다할 때까지 그리운 사람도, 잊지 못할 일도 있으며 영원한 스승의 초상(肖像)도 있다. 皮千得이 「금아문선」 제2장인 「서영이」 속에는 그러한 皮千得의 잊지 못할 스승들이 그야말로 주옥같이 그려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도산(島山)」과 「도산선생께」는 그의 민족적이 교육자로서의 스승상이요, 春園은 그를 직접 가르친 그의 마음의 스승이며 세익스피어와 도연명, 로버트 프로스트, 아인슈타인 등은 그의 문학의 또는 학문의 영원한 스승들이다.

그리고 그가 어렸을 때 죽은 ‘엄마’는 그가 영원히 그리워 마지 않는 전형적 한국 여성상(女性像)의 전형적인 세계 모성상(母性像)의 심볼이며 또한 그와 더불어 항상 따라 다니고 그의 애칭(愛稱)이기도 한 「서영이에게」 「서영이」 「서영이 대학에 가다」 「딸에게」 「서영(瑞英)이와 난영(蘭英)이」등은 그의 사랑하는 딸이기도 하고 아기의 빛나는 눈동자이기도 하며 그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눈물 고인 눈이기도 하다.

그리고 피천득에게는 영원히 존중해 마지 않는 친구상도 있고 그와 더불어 살다간 영원한 한국의 학자상도 있으며 잊지 못할 한국의 수필가상(隨筆家傷)도 있다.

그러한 그의 구원(久遠)의 초상들이 그의 맑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 중에도 「여심(餘心)」에 그려져 있는 지금도 피천득이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주요섭(朱耀燮)도 있고 「치옹(痴翁)」에 찬야되고 있는 수필의 윤오영도 있으며 성서문학을 그리스말로 가르치고 단테의 「신곡(神曲)」을 이태리말로 가르친 그의 서울대교수 때의 친구도 있다.

장르적 이상주의를 탈피하는 수필의 마음

그러한 그의 친구들, 학자들, 사랑하는 이들과 사랑하는 것들, 그리운 이들과 그리운 것들, 존경하는 분들과 존경해 마지 않는 일들은 심지어 그가 아끼고 사랑하던 인형까지도 그에게 인간의 덕(德)과 이상(理想), 사랑과 보람을 가르쳐준 은혜로운 초상들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지혜로운 초상들을 미수(米壽) 앞에 서 있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그는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간인가. 그러한 마음의 바다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는 그의 수필들이야말로 참 삶의 생명이 아닐 수 없고 살아있는 스승의 초상이 아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이 다양하기 그지없는 피천득의 마음의 초상들이 어떻게 수필이라고 하는 혹은 잡문이라고도 하고 패설이라고도 해 왔으며 고작해서 한 개인의 심경토로(心境吐露)로밖에 취급할 줄 모르던 수필장르에서 꽃 피우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알아주지도 않고 내버려진 비문학적(非文學的) 장르를 찾아내어 꽃 피우게 되었는지 오늘의 우리에게 아직도 궁금한 것은 실로 그 문학과 인간과 장르의 문제이다. 피천득이 애써 말하고 있는 그 마음의 여유로써의 수필에는 그와 같이 예술적, 문학적 영역주의(領域主義)나 주의 사상 등의 이성적 영토주의(理性的 領土主義)와 같은 패싸움을 타파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기묘한 초월능력(超越能力)이 있는 것이다.

사실 시인이나 소설작가들에게는 자신의 문학적 장르에 사로잡힌 나머지 뛰어넘지 못하는 악령 같은 것이 있다. 마치 20세기의 거의 모든 마르크스주의자가 마르크스주의를 뛰어넘지 못하듯이 말이다. 사실 마르크스주의는 욕망적인 생명존재로서의 인간적인 실체를 무시해 버리고서만 가능한 고로스 절대주의였다. 영원히 불가능한 정치사상인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만이 휴머니즘이요 과학이라고 떠들어온 것이 19세기 이래 20세기 전반부까지의 모든 지식인들을 사로잡은 근세사적 사상이요, 가치관이며 진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의 환상적인 자기기만은 문학의 한 장르에 불과한 시나 소설의 분야에도 그대로 붙어 다니며 인간의 세계를 좁고 막다른 인식론으로 몰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학정신’을 부르짖은 30년대 말의 과학철학자 알츄세르는 인식론적 절단(認識論的 絶斷)을 내세우고 이성적 사고로부터 상상력으로 전환하자고 했지만 그의 뜻은 역시 이뤄진 일이 없다. 인신론적 인식능력을 아예 끊어 없애버리자는 알츄세르의 소위 ‘인식론적 절단설’까지 나왔지만 역시 그 알츄세르의 인식능력 절단설은 마르크스주의 지상론자였던 것이다.

인식론자와 대응하는 수필의 마음

이렇게 볼 때 피천득이 그 반세기전 「수필」에서 제시한 수필로서의 ‘마음의 여유’는 인간의 인식론사(認識論史)와 정면으로 대응(對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의 수필작품들 속에서는 장르적 편협성이나 주의 사상적인 아집성(我執性)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으로서의 그가 가장 사로잡히기 쉬운 위대한 인물들까지도 마음의 한 가능성으로 찬양되고 있고 심지어 「상대성원리(相對性原理)」로 금세기를 뒤흔들고 있는 아인슈타인을 소년의 꿈으로 그려 놓을 만큼 그는 인간을 보는 눈, 생각하는 마음을 소중히 아끼고 싶고 기대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이 열린 마음, 마음의 여유야말로 피천득에 있어서는 수필이라는 스타일의 문장형식이다. 피천득의 모든 수필들을 우리가 읽고 음미했으며 공감하고 있는 것처럼 그 어디에서도 평범하고 소박한 독자이상으로 평범하고 소박한 시민이상으로 잘 생긴 점도 발견할 수 없고 훌륭한 것도 찾아 볼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아주 못나거나 비겁하고 비굴해 빠진 것도 없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천사적으로 자애롭거나 지독, 지악스러운 몰골도 아닌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고 소박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더구나 그 보는 눈, 생각하는 마음의 눈을 항상 자신의 삶을 통해서 표출해 낼 줄 아는 것이 피천득의 수필작품 세계인 것이다.

찰스 램이 에세이들과 皮千得의 이화적 시력(異化的 視力)

그리하여 필자는 그 소박 평범한 皮千得의 수필, 皮千得의 삶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그 평범 소박의 시민정신이자 인간의 마음을 그의 수필 「찰스 램」속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찰스 램의 에세이들은 皮千得이 본받을 만한 모델이 될만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모든 찰스 램의 독자들은 잘 알고 있다. 가령 찰스 램의 모든 에세이는 우선 쓰고자 하는 주제가 분명 확실하게 있어야 하며 그것도 사회생활에 밀접하게 관계되어야 하고 또한 시민의 생활관에 관련되어 있거나 전통적으로 생활관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주제가 변화하는 시대사회적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모되고 어떻게 각광을 받거나 관심밖으로 소원(疏遠)해지고 있느냐라는 문제야말로 에세이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에세이에 있어서 주제는 학문에 있어서나 칼럼니스트들에 있어서의 주제가 그러한 것처럼 반드시 에세이스트가 문화적으로 또는 지성적(知性的)으로 섭취(攝取)해야 되고 소화(消化)해야 되며 다뤄야 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에세이스트로서의 찰스 램은 베이컨이나 몽테뉴처럼 또는 고대그리스의 스토아파들이나 에피크로스파라든가 메가라파들처럼 교육자가 돼야 하고 해석자내지 설명인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에세이들 제목들이 대개는 ‘…에 대해’ ‘…에 관해서’처럼으로 되어야 하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찰스 램의 에세이는 거개가 칙칙하게 파고드는 식이며 연구적이고 구멍을 뚫고 들어가는 것처럼 천착적(穿鑿的)이다. 겨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또는 유사적(類似的)인 것을 비교적으로 혹은 대립적으로 추구(追究)해 들어감으로써 독자의 천착적인 염증을 덜하게 해 주고는 있지만 그러나 소설 작가가 소설작품을 결정(結晶)해 나가듯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묘출(描出)하고 묘파(描破)해 나가는 것 같은 皮千得의 수필들과도 비교될 수가 없다. 皮千得의 경우는 그 문장 한 가닥 한 가닥이 주제를 해석하거나 설명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제 자체를 인간의 마음에 조회하는 가운데 삶의 현실로 하여금 주제를 만들어 나가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전형적인 경우를 예로 들어 본다면 「인연」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皮千得의 隨筆作法的 關鍵

「인연」은 그대로 객관소설의 수법이다. 수필작가 皮千得의 사적인 과거이야기이면서 완전히 객관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인과의 인연이란 점에서 우리 한국의 독자에게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고 우리가 皮千得의 수필작법적인 관건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적절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인연」속에는 인본인의 기본적인 성격과 생활태도가 지극히 간단한 한두 개의 문장내지 모티브로 선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가령「인연」의 여주인공인 ‘아사꼬’가 그것인데 아침(朝)에 낳았다고 해서 아사꼬(朝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라든가 소년기 때의 皮千得이 그 집(하숙집)을 떠날 때 갖가지 선물을 주며 사랑스러운 아양을 떨고 있는 아사꼬를 보고 있던 그 부부가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라며 皮千得으로 하여금 얼굴을 더워지게 했다는 것이 그것인데 바로 이러한 것들이 일본인의 국경을 넘어선 친근미와 인간미, 생활태도를 단적으로 잘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인을 그와 같이 좋은 점만 드러내고 있다고 해서 皮千得을 친일파로 몰아붙히는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지만 바로 그 비판적인 시각이야말로 수필가로서의 皮千得이 꺼려하고 있는 점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말할 것도 없이 소년기의 皮千得은 이미 도산이나 춘원 등 일련의 항일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정신적 성향(性向)이 있다.

소년기의 그가 이「인연」속의 하숙집을 떠나게 된 것도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을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만일 그가 이 일본에서의 하숙생활을 그와 같이 반일적으로 전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皮千得은 비록 잠시 동안의 일본 생활이었을망정 그의 마음에 비친 그 아사꼬를 비롯한 일본인 부부에게서 받은 순수한 인연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순수한 인간관계야말로 그에 있어서는 중요한 소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수필작품으로써의 「인연」에 만일 그러한 반일적인 군더더기가 붙어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도 생각해봐야 한다. 마치 그것은 「수로부인」(水路夫人)에 있어서 왜 저자가 수로부인의 실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는가와 같고 「호토」(虎吐)에 있어서의 연암이 왜 수절과부라는 동리자(東里子)가 성이 다른 다섯 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지를 다시 묻지 않는 것과 같다. 만일 항일 정신이라는 엉뚱한 민족적 요구가 끼어들었다면「인연」이라는 수필작품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찰스 램의 에세이와 皮千得의 수필들을 비교해 볼 때 오늘의 우리는 에세이나 수필의 발전사적 과정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신라 설화 이래의 수필적인 우월성도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확실히 찰스 램의 에세이는 몽테뉴의 에세이에 시간적으로 가깝고 또한 그만큼 몽테뉴나 베이컨의 에세이에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비해서 皮千得의 수필은 주제를 멀리 원근법적으로 깔아 놓고 결코 이성적 판단을 직접 불러들이는 일 없이 작품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암의「허생(許生)」이나 「호토」 또는「열녀 함양 박씨전」등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皮千得 수필의 匠意性

그가 찰스 램의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수필을 쓰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찰스 램에게서 배운 것은 그 에세이들이 아니라 그 에세이를 통해서 찰스 램이 찾고자 한 그 소박하고 평범하며 단순한 그 인간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소박하고 평범하며 단순한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공감하기 쉬운 작품으로 형상화할까 해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의 수필인 것이다. 어떻게 말하든 그의 수필들이 문학적 작품성이라는 예술적 의지 또는 장인정신(匠人精神)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는 고대 그리이스 이래의 또는 몽떼뉴 이래의 에세이 정신을 신라 설화 이래의 패관문학(稗官文學)처럼 문학적 수필작품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皮千得 선생의 일상생활을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를 가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수필「찰스 램」에서 볼 수 있는 수필의 마음이란 것이 곧 그의 인격이요 그의 생활철학이란 것을 알아 차리게 될 것이다. 그도「찰스 램」을 맺으면서 램의 수필 구절을 빌어 다음과 같이 적어 놓고 있다. ‘나의 행동이 너(램=羊)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를, 나의 고운 이름이여!’라고.

이 찰스 램의 끝말은 램이 자기 자신의 인격에게 타이르는 약속인 동시에 피천득이 피천득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할 것이다. 그만큼 램의 인격적인 생활철학이야말로 바로 램의 수필이듯이 또한 피천득의 수필이야말로 피천득의 생활철학이요 인격인 것이다. 그는 심지어 평범하고 소박 단순하게 사물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점에서 찰스 램과 같을 뿐 아니라 ‘아련한 애수와 미소 같은 유머’를 즐기는 점에서도 램을 닮고 있고, 어떤 견해에 따라서는 램이 이루지 못한 문학적 수필이나 문학적 세련성을 그가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皮千得의 脫時代社會的 流行性

이러한 皮千得觀은 적어도 수필을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는 간단한 문학이라고 생각해 온 사람들에게는 더욱 어렵고 암담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 10여 년 동안 皮千得은 거의 수필을 못 쓰고 있다. 그의 수필들이라야 겨우 10매 내외의 유례 없이 짧은 소품들이고 아직까지도 100편이 채 안된다. 그러나 10매 내외밖에 아니되는 한 편 한 편의 수필들 속에는 다른 어떤 문학작품들보다도 우리를 지순하게 이끌어간 그의 마음의 숨결이 숨쉬고 있다고 할 것이다. 계량적 사고(計量的 思考)와 분화주의적 사고(分化主義的 思考)의 갈등 속에서 그래도 소년으로 돌아갈 것을 가르쳐온 皮千得의 단순 소박한 생활철학 말이다. 그리고 皮千得에 있어 그 평범하고 소박 단순한 생활 철학은 바로 그의 언어표현을 통해서 그의 수필세계에 구현되어야 한다. 그의 뼈를 깎는 각고(刻苦)의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세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皮千得의 독자들이 한결같이 皮千得의 수필 세계를 사랑하고 예찬해 마지않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皮千得 세계만이 갖고 있는 그 언어적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문학들이 탈피하지 못하고 휩쓸려 들고 있는 그 시대적 사고이자 계량적 사고이기도 하고 분화주의적 사고를 皮千得만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19세기의 니체같은 생의 철학가가 고대의 이신(異神)인 짜라투스트라까지 불러들여 잃어버린 실존적 의식의 회복을 또는 20세기의 과학철학가 바시라르가 이성적 사고를 상상력으로 전환하기 위해 인식론적 절단론(絶斷論)까지 제기(提起)했던 그 서양철학에 있어서의 20세기적 과제를 皮千得은 그 소년적 사고에의 회귀에 다름 아닌 그의 평범하고 소박 단순한 말(수필)의 전개로써 성취하고 있는 것이다.

기묘한 主體的 認識의 발견

그러기 때문에 헤겔 이래 인간의 삶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 근세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皮千得의 소년적 사고에의 회귀는 뜻밖에도 인간의 주체적 인식이란 말이 되고 주체적 인식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말하든 皮千得의 그 짧디 짧은 수필들을 읽을 때마다 음미할 때마다, 우리가 기쁨과 즐거움을 향수(享受)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모든 皮千得의 독자들이 지극히 간단하게 향수 할 수 있는 그 기쁨과 즐거움이야말로 계량적 사고나 분화주의적 사고에게 침식되어 가고 있는 인간의 주체적 인식을 회복하는 기회란 것 또한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 10여 년 동안 皮千得의 수필과 더불어 그 인간의 실존적 법열(法悅)을 향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연구과제

그리고 그와 같이 거의 모든 우리 국민이 皮千得의 수필을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 皮千得의 수필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사유적 명맥(思惟的 命脈)은 아직도 창창(蒼蒼)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성현(成峴, 1439~1504)의 「용재총화」나 연암(燕岩, 1737~1805)의 「열화일기」 등에 전형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당당하게 살아 있는 신라 설화 이래의 이른 바 패관문학정신과 皮千得의 그 수필에 이어지고 있는 사유적 명맥과는 어떻게 관련되는 것일까. 이 문제야말로 우리의 새로운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야말로 민족적 사유방식의 뿌리 깊은 나무가 아닐까 생각되며 오늘날의 시류풍속(時流風俗)이자 상식적으로도 인간의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공리적 사고(公利的 思考)를 멀리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라져 가는 이상적 인류문화사(理想的 人類文化史)의 징표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저 皮千得의 수필세계야말로 언제 어떤 눈으로 봐도 아름다운 그리고 언제나 새롭게 싹터 나오는 인간적 문화의 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도 한다.

어차피 수필의 세계는 인간의 살아있는 삶의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란 점에서 지식인만이 누릴 수 있는 한 특권적 시좌(視座)임에 틀림없지만 皮千得은 그 30년대적 초기부터 오직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서 마련된 시좌란 점에서 더구나 일체의 주의 주장을 털어버린 소년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좌란 점에서 수필문학세계로써는 언제나 때묻지 않은 새로운 눈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인간은 소년으로부터 성장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소년의 눈을 잃지 않고 팔팔하게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皮千得만의 문학적 향락이 아니라 모든 문학의 희망이라고 할 것이다. 그 소년의 눈빛이야말로 항상 관념으로 녹슬기 쉬운 인간의 마음을 되살려 주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처진 발걸음으로 앞질러 가는 시대의 삶들, 풍경을 자신의 그 마음의 여유에 비추어보며 즐기고 있는 산책인 것 같다. 늘 그렇게 살고 있는 문화의 파수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隨筆文學 1996년 7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