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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연보 및 사상

이규보의 자는 춘경(春卿) 호는 지지헌(止地軒).시금주삼혹호선생(詩琴酒三酷好先生)이라고 하며 초명은 인저(仁低) 본관은 황려(黃驪)다. 의종 22년(1168년)에 출생하여 고종 28년(1241) 74세로 작고하였다.

천마산으로 들어가 스스로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일컬었고 여기서 『천마산기(天馬山記)』를 비롯해 『백운거사어록(白雲居士語錄)』20권과『백운거사전(白雲居士傳)』영웅서사시『동명왕편(東明王篇)』3권을 지었다. 전해 지는 작품은 의인체로 쓰여진 소설『국선생전(麴先生傳)』이 있고 패관문학인『백운소설(白雲小說)』그의 아들 함(涵)에 의해 간행된 문집『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 있고『동문선)』에도 이규보의 작품이 상당하게 수록되어 있다.

이규보는 술과 문학과 정치를 잘 조화시킨 고려 최고의 문장가이며 무신정권이 수립되고 권문세족이 무너지면서 신진사류층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가계는 진취적인 기질을 형성하였고 이에 일생동안 무수한 시련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 불리었는데 그 자신도 문장으로 세간에 명성을 날리고 사회에 기여할 인물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에 많은 독서와 문재를 연마하여 문학을 통해 국가를 빛내고 자신도 출세를 도모하려는 문학 효용론을 그의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以文華國)

그의 자연관은 무위자연관이다. 즉 대자연속에서는 인간이나 만물이 한가지이고 생명도 인간이나 미물이나 다같이 소중한 것이라 강조하며 인위적인 노력을 부정하는 인식이었다. 자연은 우주 만유의 본체요 질서이며 자연과 자아를 합일시켜 외물에는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민중(농민이나 노예)들은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본 것이 아니라 상류층 존립의 기본 요건으로서 인식하였다. 그래서 이들의 지나친 수탈을 비난하였다고 볼 수 있다.

2. 이규보의 수필

그의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은 전집이 41권인데 18권까지는 시집이고 19권부터 수필들이 수록되어 있다.(12권의 후집이 더 있음) 『동문선(東文選)』에도 수필문학의 범주에 속한 것이 94편이다. 이 밖에도 수필적 성격을 띤 서간문 제문(祭文) 축문(祝文) 비명(碑銘) 등 20여 편이 있다.

1)설(說) - 간략한 단편으로 꽁트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다. 어떤 사물을 해설한다는 뜻인데 한문학 문체의 한 양식으로 크게는 ‘論’ 속에 포함되어 있다. 모두 예리한 비판과 심오한 철학을 지니고 있어서 수필로써 격조가 높다고 평할 만하다. 주요 작품으로「舟賂說」「理屋說」「忌名說」등이 있으며 「蝨犬說」과 「鏡說」을 감상해 보기로 한다.

슬견설(蝨犬說)

어느 나그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제 저녁엔 아주 처참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떤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돌아 다니는 개를 쳐서 죽이는데 보기에도 너무 참혹하여 실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하는 화로를 끼고 앉아서 이를 잡아서 그 불 속에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그 나그네는 실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蝨)는 미물이 아닙니까? 나는 덩그렇게 크고 육중한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한 말인데, 당신은 구태여 이를 예로 들어서 대꾸하니 이것은 필연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대들었다. 나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말․돼지․양․벌레․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큰 놈과 작은 놈을 적절히 대조한 것이지 당신을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당신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십시오. 엄지 손가락만이 아프고 그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니까?

한 몸에 붙어 있는 큰 지절(支節)과 작은 부분이 골고루 피와 고기가 있으니 그 아픔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각기 기운과 숨을 받은 자로서 어찌 저놈은 죽음을 싫어하고 이놈은 좋아할 리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물러가서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大鵬)과 동일시하도록 해보십시오. 연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도(道)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이 작품은 비교와 대조, 연역, 대화에 의해서 전개된다. 비교와 대조는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개’는 집권 세력에 속하던 사람을 가리키고 ‘이’는 피지배 계급(농민이나 노예)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규보가 살던 시대(최충원집권)에는 잦은 정권 투쟁과 반란으로 고급 관리와 군인과 민중이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었다. 이 작품에 표현된 ‘개’의 죽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배 계급의 인물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비유하고, ‘이’의 죽음은 부패한 정부의 지나친 착취를 견딜 수 없어 반란을 일으키고 죽음을 당하던 민중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규보는 이 작품을 통하여 국가 존립의 기틀이 민중이라는 의식을 시사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 다른 관점으로 이 작품을 보면 그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저절로 생성되고 사멸하는 만물 중의 혈기를 갖게 된 모든 동물은 생을 좋아하고 사를 싫어함이 모두 같다는 것이다. 대자연 속에서는 인간이나 미물이 한가지이고 생명도 인간이나 미물이나 다같이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때묻은 거울 이야기(鏡說)

어떤 거사(居士)가 거울 하나를 갖고 있었는데 먼지가 끼어서 흐릿한 것이 마치 구름에 가리운 달빛 같았다.

그러나 그 거사는 아침저녁으로 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가다듬곤 하였다. 한 나그네가 거사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든가, 아니면 군자가 거울을 보고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거사의 거울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고 때가 묻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항상 그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얼굴이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맑고 알른알른한 거울을 좋아하겠지만, 얼굴이 못생겨서 추한 사람은 오히려 맑은 거울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기 때문에, 만일 맑은 거울 속에 비친 추한 얼굴을 보면 반드시 거울을 깨뜨려서 부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깨져 버릴 바에야 차라리 먼지에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먼지로 흐리게 된 것을 겉뿐이지 거울의 맑은 바탕은 속에 그냥 남아 있습니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만난 뒤에 닦고 갈아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아! 옛날에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함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오히려 흐린 것을 취하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이를 이상스럽게 생각하시오?“

하니 나그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 글은 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글이다. 거울은 밝은 것, 얼굴을 비쳐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규보는 도리어 흐린 거울을 예찬하고 있다. 이는 상식의 눈을 뒤엎어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를 역설에 의해서 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못생긴 얼굴의 결점을 낱낱이 비쳐줘서 알려주는 거울보다 희미해서 결점을 감춰주는 쪽이 덕이 있다는 것이다. 즉 밝은 거울의 합리적 지성보다 남의 잘못을 감싸주고 덮어줄 줄 아는 덕(德)이 지(知)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역설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슬기를 지닌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집을 수리하고 느낀 것 (理屋說)

행랑채가 허물어져서 제대로 버티지 못한 것이 세 칸이다. 나는 어떨 수 없이 이를 모두 수리하였다.

그런데 그 중의 두 칸이 장마에 샌 지가 오래 되었는데,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손을 대지 못했다. 나머지 한 칸은 비를 한 번 맞고 새었기 때문에 서둘러서 새 기와를 갈아 넣었다. 그런데 수리하려고 본즉 비가 샌 지 오래 된 부분은 그 서까래․추녀․기둥․들보가 모두 썩어서 못쓰게 되었다. 그래서 수리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그러나 한 번밖에 비를 맞지 않은 한 칸의 재목들은 모두 완전하여 다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경비가 훨씬 적게 들었다.

나는 여기에서 느낀 것이 있었다. 사람의 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란 사실을.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지 않으면 곧 그가 나쁘게 되는 것이 마치 나무가 썩어서 못쓰게 되는 것과 같으며, 잘못을 알고 즉시 고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 집의 재목을 다시 쓸 수 있는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 되며 건전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치도 이와 같다. 모든 일에 있어서 백성에게 엄청난 해로움이 미치는 정책을 곧 개혁하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백성이 못살게 되고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변경하려면 쉽게 만회할 수가 없다. 조심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느낀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교훈을 이끌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잘못된 것을 그때그때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손을 쓰기 어렵다는 점을 예시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교훈을 인간의 문제나 정치의 문제에까지 확대 적용시키는 유추적 사고가 돋보인다. 간결한 내용 속에서도 삶의 중요한 이치를 일깨우고 있는 작품이다.

2)기(記)-역시 설과 비슷한 양식이나 어떤 사물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이다. 「사륜정기」 정자에 바퀴를 달아 자연을 감상한다는 그의 호탕하면서도 기발한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정자를 끌고 다니다가 마음에 맞는 곳을 만나면 세워두고 그 정자에 앉아 시,음악,술 차를 즐긴다. 풍류객이 아니면 생각 할 수 없고 공감할 수도 없는 기상천외의 착상이다. 그러나 이규보는 풍류만 일삼지 않고 천지 음양조화와 정사를 생각하여 설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칫수와 구조가 아주 자세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 수필은 33세때 전주목 사록겸 서기에서 파직당하고 개성으로 돌아와 지었다. 후에 이 정자에 대한 낙성식을 올렸다는 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설계로만 끝난 것 같다. 이외에도 「通齋記」「四可齋記」「接果記」「草堂理小園記」등이 있다.

3) 꿈의 문학-이규보는 꿈의 상징성과 그 신비성에 관심을 갖고 ‘꿈의 글’을 발표했다. 「夢說」은 위도 유배지에서 꿈의 영험함을 체험하고 67세 때 그 신비스러움을 글로 남겨놓았다. 짤막하면서도 진실성이 깃들어 있는 수필이다. 이 밖에 「夢驗記」라는 꿈의 수필이 있으며 이 작품도 「夢說」을 쓴 해에 지었다. 그가 재상 벼슬에 오른 해이다. 인신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앉게 되어 감회도 깊었고 영달은 인력으로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꿈의 영험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가 꿈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꿈과 그의 생애가 들어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미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불신이다. 중국의「杜牧傳」과 자기의 체험을 엮어서 쓴 작품「시루가 깨어지고 울다」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잡저 속에 들어 있는 글로 꿈의 글에 비해 훨씬 과학성과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4)서(書)-이규보의 서간문은 「동문선」에만 제록된 것이 45편인데 여기엔 상사, 동료, 후배에게 준 편지, 또는 몽고 관리에게 보낸 것 등 다양하고 내용도 사사로운 데서 공무에 이르기까지 퍽 다채롭다. 작자의 구체적인 일상 생활의 고민, 처세의 비결, 대인관계 등이 잘 나타나 있다.

5)제문(祭文)-제문은 12편이 역시「동문선」에 있는데 산사람이 죽은 사람의 혼령에게 전하는 글이다. 자기 아내의 제문, 재상을 조하는 제문, 唐將 소정방 제문 등등으로 역시 다양하다. 서간문처럼 수필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6) 명(銘)-銘은 한문학의 한 문체의 이름인데 운문체로 쓰기도 하고 산문으로도 쓰는 간결한 글로 좌우명이라는 것과 비슷하다. 돌이나 그릇, 그 밖의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훈계가 될 만한 글을 새겨 놓고 주야로 그것을 보며 생활의 반성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그 글이 銘인 것이다. 자신의 반성과 후손에 대한 훈계의 뜻도 있지만, 문학적 향기가 짙게 풍기는 글들이다. 「小硯銘」을 비롯하여「長尺銘」「樽銘」「漆壺銘」등이 있다.

3. 이규보의 문학세계

이규보의 사상 밑바탕에는 유교적인 중용과 노장의 무위자연이 깔려 있으며 만년에는 불교에 몰입하였다. 그의 문학은 자유분방하며 웅장한 것이 특징이다. 스스로 “나는 고인의 말을 답습하지 않고 신의(新意)를 창출하였다“라고 하였을 만큼 그의 문학은 독창적이며 내용 또한 다양하였다. 실용문에도 능하여 국왕의 제고(制誥). 비답(批答). 표전(表箋)등을 도맡았으며 시론 및 시평론으로서 최초의 선구자였다.

시대상에 대한 반감을 우의적 풍자적으로 나타낸 작품이 수 편에 이른다. 이 작품들은 비록 소품이지만 그의 사상과 당시의 세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타인의 문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것들이다.

그의 수필의 특징은 우선 유려하면서도 무게가 있고 탄력성 있는 문장, 인생을 달관하는 철학, 폭넓은 체험, 허식이 없는 진실성이 있어서 수필이 갖추어야 할 중후한 전통을 갖고 있는 것들이다. 또한 슬기를 지닌 문학이고 웃음, 유우머가 있으며 문답식으로 전개되는 지성이 있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있다.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는 풍류의 미 또한 곁들여 있다. 이규보의 문학은 현대인들에게 풍성한 삶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참고 문헌

전형대. 이규보의 삶과 문학. 홍익사

이어령. 고전을 읽는 법. 갑인출판사

장덕순 역. 슬견설. 범우사

전형대 외. 한국고전시학사. 홍익사

신용호. 이규보의 의식세계와 문학론연구. 국학자료원

장덕순. 한국수필문학사. 새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