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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힌 공간, 열린 정신/ 신영복
  글쓴이 : 장현숙 날짜 : 04-04-18 15:46     조회 : 5191    

옷은 새옷이 좋고 사람은 헌 사람이 좋다고 하는데, 집의 경우는 어느 쪽이 좋은지 생각 중입니다. 집은 옷과 달라서 우리 몸에 맞추어 지은 것이 아니며, 집은 사람과 달라서 시간이 흘러도 양보해 주지 않습니다. 새 교도소에 이사와서 보니 새집은 역시 길들일 것이 많습니다.

소혹성에서 온 어린 왕자는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 이라고 합니다. 관계의 맺음이 없이 길들이는 것이나 불평등한 관계 밑에서 길들여지는 모든 것은 본질에 있어서 억압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 개의 나무 의자든, 높은 정신적 가치든 무엇을 공유한다는 것은 같은 창문 앞에 서는 공감을 의미하며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운명의 연대(連帶)를 뜻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인적이 없던 이 산 기슭에 지금은 새하얀 벽과 벽에 의하여 또박또박 분할된 수많은 공간들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그중의 어느 각진 1.86평 공간 속에 곧추앉아서 이 냉정한 공간과 제가 맺어야 할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수많은 공간과 지극히 작은 일부를 채우는 64Kg의 무게, 높은 옥담과 그것으로는 가둘 수 없는 저 푸른 하늘과 자유로움을 내면화 하려는 의지....한 마디로 닫힌 공간과 열린 정신의 불편한 대응에 기초하고 있는 이러한 제관계(諸關係)는 교도소의 구금 공간과 제가 맺어야 할 역설적 관계의 본질을 선명하게 밝혀줍니다. 그것은 길들여지는것과는 반대 방향을 겨냥하는, 이른바 긴장과 갈등의 관계입니다. 그것은 관계 이전의 어떤 것, 관계 그 자체의 모색이라 해야할 것입니다.

긴장과 갈등으로 팽팽히 맞선 관계는 대자적 인식(對自的 認識)의 한 조건일 뿐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관계의 실상입니다. 관계를 맺고 난 후의 편안하게 길들여진 안거(安居)는 일견 '관계의 완성' 또는 '완숙한 관계' 와 같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그 내부에서는 그것을 가져다 준 관계 그 자체의 붕괴가 시작되고 있음을, 이미 붕괴가 끝나가고 있음을 허다히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새 교도소에 와서 느껴지는 이 갈등과 긴장을 교도소 특유의 어떤 것, 또는 제 개인의 특별한 경험 내용에서 연유돤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물(事物)의 모든 관계 속에 항상 있어온 '관계 일반의 본질'이 우연한 계기를 만나 잠시 표출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긴장과 갈등을 그것 자체로서 독립된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도리어 이것을 통하여 관계 일반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시점(視點)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제 자신과 제 자신이 놓여 있는 존재 조건을 정직하게 인식하는 귀중한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긴장과 갈등을 견딜 수 있고 이길 수 있는 역량을 제 개인의 고독한 의지 속에서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하얀 벽과 벽에 의하여 또박또박 분할된 그 수 많은 공간마다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서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갇혀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많은 사람들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튼튼한 연대감이야말로 닫힌 공간을 열고, 저 푸른 하늘을 숨쉬게 하며, 그리하여 긴장과 갈등마저 넉넉히 포용하는 거대한 대륙에 발 디디게 하는 우람한 힘이라 믿고 있습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픔' 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봅니다.

보내주신 돈과 시계는 잘 받았습니다. 잠겨있는 옥방 안에서도 시계는 잘 갑니다. '막힌 공간에 흐르는 시간', 흡사 반칙(反則)같습니다. 팔목에 시간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간에 각박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차피 무기 징역은 유유한 자세를 필요로 합니다.

4 월의 훈풍은 산과 나무와 흙과 바위와 시멘트와 헌 종이와 빈 비닐봉지에 까지 아낌없이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어주고 있습니다. 가내의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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