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가 밝았다. 달력 한 장 차이지만, 그 안에 회고와 정리, 소망과 기대, 희망과 열정이 자리바꿈하는 장엄한 의례의 순간이 담겨 있다. 작심삼일이든 스스로에게 다짐한 무모한 약속이든 간에, 새해에 처음 품는 소망은 그 자체로 신성하며, 우리에게 생의 활력을 제공한다.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 지켜온 세월의 힘에 기대어, 올 한 해도 새로운 꿈을 품고 살아가려 한다.
지난 한해, 여러 가지로 한국 사회가, 어쩌면 21세기를 사는 현대인 모두가 힘들었기 때문에, 달력이 바뀌었다고 해서 새 희망을 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가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한다. 희망을 지지하는 오래된 격언과 명언이 과연 여전히 가치 있는지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그렇다고 맹신하지도 말고, 그게 과연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현재적 검증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고전적 명언에 대한 성찰적 사색
먼저 질문을 던져보겠다
덕은 보답 받는가.
과연 고진감래인가.
사필귀정의 시대인가.
이 질문은 원래는 의문문이 아니라 서술형의 고전적 진리였다. 요즘은 이러한 문장이 외면받는 추세이기 때문에, 완전히 폐기처분되기 전에 질문을 던져 응답해 보려 한다(때로는 질문이 구원이다.).
우선, ‘덕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따르는 이가 있다(德必有隣)’는 말은 〈논어〉「이인(里人)」편에 나온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덕이 있는 이가 아니라, 돈이 있고 권세 있는 이에게 사람이 붙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반대로 덕이 있는 사람은 무시당하거나 손해보고, 오히려 고립된다는 느낌도 가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는 파워 메이커가 덕이라는 정신적 가치까지도 포획하여 포장할 수 있다는 감각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불행해지고 우울해졌다. 돈과 권세를 따르는 사람도 그 파워에 자신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나사못(찰리 채플린이 1936년에 만든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의 나사못 조이기 신으로 이미 다 표현한 일이다)으로 변신시켜야 하고, 결코 행복하지가 않다(그런 의미에서 조직 사회의 일원은 어느 정도는 자아의 트랜스포머다. 미셸 푸코의 말을 응용하자면 ‘자기의 테크놀로지’를 경영하는 자다. 그것을 인식할 때 행불행도 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때, 조직사회의 성공적 일원이 되는 게 아니라, 자아를 상실한 ‘기계-인간’이 되는 것일 뿐. 뒤늦게 그것을 회복하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을지 모른다.).
반대로 덕이 있는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목소리를 잘 내지 않을뿐더러, (숨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나서는 것을 번거로워하기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는 고요의 상태에서 내면을 닦는 즐거움을 기꺼이 택하게 된다. 간혹 백만 팔로워를 거느린 덕 있는 사람도 있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겉으로 보기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거나, 고독할 거라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이를 보게 되면 표정이 여유롭고 태도는 풍성해 보인다. 그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녀의 몸에 밴 유유자적함이란 곤고한 삶을 견디는 노하우일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견딘 게 아니다. 덕을 지킨 삶은 그 사람에게 전혀 다른 삶의 경험을 안겨준다. 그것이 덕의 선물이다. 그것은 노력 없이 탐해서도 흉내 내서도 안 되는 행복의 열매이자, 인생 고유의 몫이다(나는 덕의 증인이 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관찰한 사람으로서의 발언 자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해 보았다.).
문제 해결의 방법은 오히려 간단하다. ‘덕이 있는 자에게 따르는 이가 있다’는 말은 오직 개인을 향해 있다. 덕을 택하는 것도, 덕이 있는 자를 따르는 것도 모두 ‘개인’의 문제처럼 말해지는 것이다. 문장의 주어를 개인이 아니라 사회로 바꾸면, 의미에 변곡점이 생성된다.
“덕 있는 자를 따르라.”
“덕이 있는 자를 존중하는 인정구조를 만들라.”
그것이 사회적 힘(social power)이다. 그것이 문화다. 물론 그 사회 구성원은 하나하나의 개인임에 분명하다.
우리 앞에 힘든 현실이 있다면,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미루지 말고 나를 포함시키는 형식으로 포섭해야만 실질적인 힘이 생성된다. 남 탓을 하며 누군가의 힘에 의지하려 해도, 혼자만의 문제로 고독하게 끌어안아서도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생긴다 해도 너무 더뎌서 쉽게 지칠 수 있다). 문화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력하는 삶은 위대하다. 변화는 그냥 오는 법이 없다. 공부(인식)하지 않고 배워지는 게 없는 것과 똑같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하고 싶어진다. 과연 우리 사회에 덕은 필요한가. 덕이라는 고색창연한 단어가 과연 이 각박한 현대 사회에, 삼엄한 경쟁일로의 21세기에 무엇을 할 수 있나.
인간은 그 자체로 고색창연한 존재, 미래이자 과거인 현재
질문은 언제나 답을 수반한다. 질문 속에 이미 답이 다 들어 있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21세기적인 특수한 시대의 요원이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유전자를 통해 생명과 문화를 전파하고 이끌어온 고고학적 존재다. 덕이 아니고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신성하고 고귀한 인간됨을 확인 받을 것인가.
돈과 권력이 확실한 행복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면, 덕, 마음, 가치에 대한 사회적 투자 또한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시간과 정성의 투자 없이 결과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탐욕이다. 헛된 야망이며 이룰 수 없는, 이미 전도된 꿈이다(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을 나는 ‘회계하는 인간’으로 명명한다. 그것은 자주 성공적이고 이윤을 남기지만, 그런 것을 싫어하는 이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는 게임이다. 세상은 계산기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사람에게는 애초에 무모하고 계산이 성립되지 않는 감성 요소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가장 활성화된 사례가 창조적 잉여로서의 예술[창작과 감상]일 것이다.).
아직 위에 적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응답하지 않았다. 스스로 함께 생각해서 답을 구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러한 고전적 명언에 대한 현대적 응답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성찰적 질문에 대한 폭넓은 경청과 수렴의 과정이 필요하다(정당 지지도, 카드사, 신형 스마트폰, 대출에 대한 전화 조사가 많은데, 마음과 정신에 대한 설문조사의 새 지평도 열어보자. 우리 사회는 좀 더 흥미로운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걸로 부족하다면 다음에 이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새해에 새 희망을 품는 것은 존엄하지만, 그것을 지키고 이뤄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더욱 고결하다. 다이어트, 운동, 외국어공부 같은 작심삼일 프로젝트가 비록 이뤄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하게 되듯이, 마음과 덕에 대해서도 새해에 스스로 희망과 기대의 몫을 마련해 두었으면 한다. 일단 정해 두면, 몸과 마음이 알아서 자기 몫을 챙기려 할 것이다. 그게 결심의 힘이고 희망의 파워다.
새해에 모두 스스로의 삶과 사회에 대해, 욕심을 덜어낸 희망을 품고 그것을 이뤄내는, 등불 같은 시간을 경험하기를 바라고 또 기원해 본다
출처 - 실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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