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년 다산의 나이는 48세였습니다. 그 전해에 강진읍내의 삶을 정리하고 「다산초당」이라는 윤씨들의 산정(山亭)으로 옮겨 안정된 생활을 시작한 1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전해의 겨울부터 서서히 가물더니 봄이 지나고 여름을 거쳐 가을에 이르기까지,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아 들판에는 파란 풀 한 포기 없는 처참한 지경의 가뭄에 극악한 흉년이 들어 힘없고 가난한 농민들은 살길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유리방랑하는 사람들이 길을 메우는 비참한 세상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입추까지 새빨간 땅덩이만 천 리에 이어지고, 들판에는 파란 풀 한 포기 없었다. … 나야 귀양와서 엎드려 있으며, 인류의 대열에도 끼지 못해 흉년 타개책인들 건의할 지위에 있지도 못하고, 백성들의 처참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임금께 바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때때로 본대로 기록하여 시가집으로 철해 놓았다. 이거야 뭐 쓰르라미나 귀뚜라미들과 더불어 푸성귀 속에서 함께 애달프게 읊어대는 울음이리라. … 오랫동안 써 내려가다 책으로 되었기에 『전간기사(田間記事)』라고 했다”「전간기사 머리글」
역적 죄인으로 귀양살며 차마 눈으로는 볼 수 없고, 귀로는 들을 수 없는 흉년의 백성들 참상을 묵묵히 보고만 있다가는 울화통이 터져 불상사라도 일어날까 봐 시가로라도 읊었다는 것입니다. “성정의 올바름이 하늘과 땅의 화기(和氣)를 잃지 않음을 구하려 함이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던 것입니다. 다북쑥을 캐다가 죽을 끓여 온 식구가 서로 많이 먹으려고 싸우는 집안의 모습, 말라버린 논바닥에서 마른 모를 뽑으며 한탄하는 농부들의 모습, 메밀 종자도 주지 않으면서 대체작물을 심으라고 독촉하는 관리들의 횡포, 보리죽을 끓여 먹다가 속이 쓰려 고생하는 가족들의 모습, 이런 처참한 모습에 삶의 의욕까지 잃고 말았다는 다산의 아픈 마음이 「전간기사」에 실린 시들입니다. 부모들이 버려 길거리에 떠도는 어린 남매의 이야기인 「유아(有兒)」라는 시는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시임에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러한 극한의 가난에서는 벗어났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마음과 정신의 가난은 꼭 그렇게 넉넉하게 벗어났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작금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 역사교과서 국정화만 해도 우리들을 너무나 슬프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의 국민들이 국정화는 안 된다고 성명으로 탄원으로 결의문으로 간절하게 울부짖고 있건만, 마치 다산선생이 「전간기사」에서 읊조렸던 시가처럼, 풀벌레들이 푸성귀 사이에서 외쳐대는 슬픈 울음소리보다 더 낮게 취급하면서 일언반구의 참작 없이 돌격대처럼 앞으로만 가는 정부를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쓰리기만 합니다. 역사 전공 교수나 학자들이 대부분 반대하고 많은 국민들이 각계각층에서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도 쓰르라미나 귀뚜라미 울음소리처럼 무시해버리는 정부,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화기를 잃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라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두세요!
출처 - 다산연구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