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당하는 고통이야 셀 수 없이 많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장 큰 고통의 하나는 감옥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산은 “감옥이란 땅 위의 지옥이다(獄者陽界之鬼府):『목민심서』)”라고 말하여 지상의 지옥인 감옥만은 피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버금가는 고통의 하나가 바로 유배생활입니다. 산설고 물선 섬이나 육지의 끝에서 가족과 결별하고 절대고독에 시달리는 유배살이, 큰 고통임에 분명합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던 유배살이를 18년 동안이나 겪었던 다산, 자신이 당하는 질곡의 생활은 잊고서, 한시라도 잊지 않고 걱정하고 근심하던 것은 바로 나라와 국민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부하고 강한 나라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가 다산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대체로 유배지에서 이루어졌던 500여 권이 넘는 다산의 저서를 읽어보면 어느 하루 편할 날 없이, 자나 깨나 우국애민(憂國愛民)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갔음을 금방 알아낼 수 있습니다.
숙종 6년이던 1680년,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세습적이며 독점적이던 특수 집권층이 권력을 독차지하여 벌열(閥閱) 정치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을 때가 다산이 살아가던 때였습니다. 부(富)와 권력을 독점한 벌열 층의 압제와 핍박에 시달리던 일반 국민들은 굶주림과 착취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을 때, 약한 백성들을 위해서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던 다산은 벌열 층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의 비참한 삶과 당하던 고통의 아픔을 여과 없이 노래했던 다산의 시는 바로 사회와 역사를 통찰한 뛰어난 관찰력과 애국심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서쪽(황해도·평안도) 지방 백성들 오랜 세월 억압받아
십세(十世)토록 벼슬 한 장 없었네
겉으로야 공손한 체하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만이었네
옛날에 일본이 나라 삼키려 했을 때
의병이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서쪽 백성들이 수수방관했음은
참으로 그럴만한 이유있었네
西民久掩抑
十世閡簪紳
外貌雖愿恭
腹中常輪囷
漆齒昔食國
義兵起踆踆
西民獨袖手
得反諒有因 - 「하일대주(夏日對酒)」
「여름날 술을 마시며 읊은 시」라는 제목의 장문의 다산 시는 잘못되어가는 세상에 대한 통분과 한탄을 사실적인 수법으로 적나라하게 읊어댔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안고 있던 가장 큰 병폐는 바로 신분 차별과 지역 차별이었습니다. 황해도와 평안도, 함경도까지 서북 3도 국민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천대받아, 중앙의 관계에 진출하기도 어려웠고, 온갖 수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만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그런 사회적 질곡을 해결하려는 간절한 뜻이 다산에게는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기득권층의 횡포에 분노하고, 신분과 지역 차별에 아파하던 다산, 200년이 지난 오늘에는 그런 아픔이 우리 국민들에게 없을까요. 특정 지역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특정 지역 출신들에게는 이유 없는 혐오증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다산의 뜻을 생각해서라도 정상적인 생각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출처 - 다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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