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97년의 봄은 잔인한 계절이었다. 온 국민이 받은 상처는 너무 깊었고 허탈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권력비리, 금융부정이 드러나고, 도산하는 기업에 실업자는 늘었다. 은행이 문을 닫느니 북에서 남침할 것이라느니, 불길한 소문이 나라가 곧 망할 듯했다. 그토록 불안한 현실에 무력한 정치, 불투명한 앞날, 어디를 봐도 분홍빛 미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앞이 캄캄하던 우리에게 탈출구의 기미가 보였다.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 방송을 시청하면서부터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 것이다.
대선주자는 물론 예비 후보들의 토론도 놓치지 않았다. 세군데 방송을 다 섭렵하는 극성스런 시청자가 된 셈이다. TV토론은 바람몰이 같은 것 없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 후보의 국정 전반을 손금 보듯 꿰뚫는 통찰력이 놀랍고, 경제며 외교 통일의 문제점을 짚고 그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내 놓는데 공감이 갔다. 많이 생각하고 고뇌한 흔적이요 철학에서 나온 판단이고 신념임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메모 없이 여러 가지 수치며 통계를 정확하게 대답할 때 그의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그는 21세기를 향한 우리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21세기엔 태평양권이 세계의 중심이 될 텐데, 우리의 높은 교육열과 강한 성취욕을 올바르게 이끌어 활용한다면 고구려 시대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청사진을 펴 보였다. 광개토대왕의 추진력을 피력하는 의지에 찬 후보의 말에 묻혀진 발해의 꿈이 되살아났다.
몇해 전 초겨울이었다. 찬바람이 가슴을 파고드는 어느날 '아!고구려 전'을 보려고 현대미술관에 갔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고구려 번성기의 지도가 붙어 있었다. 그 지도에는 고구려 수도 집안(輯安)이며 내 선친께서 독립운동 관계로 무수히 드나들었던 봉천, 그리고 요령성, 길림성 등에서 불이 번쩍였다. 그 효과로 지리부도에서 볼 때보다 대륙으로 확장된 국토를 실감하게 되었다. 유리왕에서 장수왕까지 425년간 우리가 지배해 온 땅이었으니,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활개를 폈던 시대인 것이다.
벽화에는 천지창조의 신화가 첫머리에 있었다. 선남선녀가 해와 달을 머리에 이고 가슴에 안고 날고 있는데, 샤갈의 그림처럼 환상적이다. 또 태양 속에서 산다는 전설 속의 새 삼족오(三足烏)가 눈길을 끈다. 빨강색 바탕에 검정까마귀의 대비가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발이 셋인 까마귀라니, 얼음방망이로 한 대 맞은 듯 신선감을 주었다. 모든 새 종류는 발이 두 개라는 인식을 깨고, 까마귀에게 발 셋을 달아 준 상상력이 사뭇 파격적이다.
고구려 무용총의 사냥도에는 깃털을 머리 꽂고 말 타고 활쏘는 남자들, 패기 넘치는 씩씩함이 잘 나타나 있다. '남자의 아름다움은 곧 힘이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신궁(神弓) 양만춘(楊萬春)을 비롯 활을 잘 쏘는 민족의 후예라서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서 금메달을 휩쓰나 보다. 원래 동이(東夷)는 큰생각 따르고 큰활 잘 쏘는 동방의 어진 사람이라는 뜻인데, 과거 위정자들이 사대모화사상에 젖어 중국에 동화되려고 애쓰는 통에 '동이'라는 말이 도둑의 대명사로 전락했다던가. 우리 조상은 또한 상고시대부터 말도 잘 탔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유목민의 음악은 3박자, 농경민의 음악은 4박자인데, 동양에서 우리의 민요가 유일하게 3박자 음악인 것은 우연일까. 이스라엘 음악의 박자가 우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수산리 벽화의 미인들. 비파 타는 여인, 양산 쓴 여인들의 화려한 나들이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구려 여인의 옷은 조선조의 복식처럼 아기자기한 맵시는 없어도 활동적으로 보인다. 옷의 힘찬 선을 봐서 활달했을 것 같다. 아무튼 고분 벽화는 고구려 사람들의 진취적인 기상을 웅변으로 전해 주었다. 실물 크기로 만든 고분 모형물 안에는 아득한 태고의 공간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500년 전 그림이 지금도 선명한 색채로 살아 꿈틀거리는 듯했다. 내가 고구려전을 보기 전에 고구려의 황성 옛터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떠날 때는 백두산 천지를 보려고 가는데 중국으로 돌아서 가야 하는 처지가 서글펐으나, 다녀올 때는 백두산 한쪽이 중국 땅이 된 것이 안타까웠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국토였으나 현실적으로는 중국 국토가 된 고구려의 옛 땅을 밟으며 묘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독립군의 주 무대며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서역(西域)을 평정했던 고구려의 장수 고선지(高仙芝), 새보다 빠르다는 그의 철마가 저 벌판을 달렸겠지. 그 웅장함에 기가 죽는다는 광개토왕의 비석은 어디쯤 있을까.
역사의 현장을 다녀오고 고분 벽화를 본 뒤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 통일을 했다면,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가정법 아래 상상을 해 본다. 광활한 영토에서 사람들의 마음도 클 것이며 국력도 강해서 일제의 지배를 받지도, 분단국이 되지도 않을 성 싶다.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이룬 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와 백제는 사라지고, 고구려 장수 대조영이 세운 발해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지난 몇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다른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이 나라 형편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를 되짚어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 역사의 바탕 위에 오늘이 있으므로 오류를 깨달아 지혜를 얻어 내일을 준비한다면 부질없는 것만은 아닐 것 같다.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 것 같으냐고 가까운 사람에게 묻자, 신라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과장되고 미화되고 합리화시켜 썼기에 왜곡된 면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기록에 의존한 판단은 무리가 아닐지...
고구려의 옛터를 보면서, 땅은 비록 빼앗겼으나 조선족 자치구역 연길에서는 우리의 말과 글을 쓰며 전통문화를 본토보다 더 살뜰하게 가꾸고 있음이 고맙고, 의식주 전반에 있어 눈에 익은 풍습들이 발해의 꿈을 살려가는 것으로 보였다.
유태인과 중국 민족이 자기의 언어와 풍습을 집요하게 지킨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2000년간 국가 없이 떠돌며 살았어도 자기 말을 버리지 않았기에 다시 뭉쳐 나라를 세울 수 있었르리라.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앞으로 지리적 국경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전쟁도 영토확장보다 경제, 정보, 기술, 과학의 전쟁이 치열할 것이며, 현대의 국력은 지적 인력, 산업재정, 문화적 영향력에 달려 있다고 했다. 또 초국가 시대로의 전환은 국경은 약화되고 민족은 강화되는 때에, 우리 동포가 과거 고구려 땅에서 모여 한민족의 얼을 지키며 사는 곳은 우리나라의 어느 지방으로 여겨도 될 것 같다.
'아! 고구려 전'은 조상의 기상을 일깨워 주고 역사를 평면적으로만 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보는 안목을 키워 준 셈이다. 내가 가서 보았던 곳과 벽화 속의 고구려를 연결지으며 전시장을 싸목싸목 걸어 나오는데, 어느새, 어둠살이 든다. 침묵의 역사요 웅변의 역사인 고분 벽화를 품고 있는 미술관은 석양에 감싸여 있다.
그때의 석양만큼이나 곱게 물들었던 발해의 꿈이 몇 년 새 퇴색되었는데, 한 대선 주자에 의해서 되살아나려고 한다. 갑자기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른 노래 '발해를 꿈꾸며'가 듣고 싶어진다.
이 글을 실은 지 몇 해가 지난 지금 경의선이 이어져 북쪽으로 뻗어가는 우리의 힘이 발해의 꿈을 넘실거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