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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이 완성되면 지은이 가나다 순서로 정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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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나성균 |
날짜 : 03-11-27 23:58
조회 : 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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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덧이라고 느낀 것은 쉰 일곱 되던 해의 봄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불면증에 차츰 식욕이 없어지고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력감에 시달렸다. 나이 쉰 일곱이면 누구나 겪는 삶의 허탈감쯤으로 여기고, 그저 봄을 심하게 타는 것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증상은 심상치 않게 중증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예사 봄 타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입덧이 나도 보통이 아닌 심한 증세였다. 겁이 더럭 났다. 그리고 남이 알세라 혼자서 전전긍긍 입덧을 감추느라 어찌나 힘이 들었던지……. 이 나이에 웬일이랴 싶어 창피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용기 백배하여 낳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물안개일 듯 일기도 했었다. 어떻게 할까, 남들이 웃긴다고 손가락질할 것 같아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반면에 이 나이에 정상적인 아이가 분만될 것인가 하는 두려움에 가슴 떨리기도 했다. 욕심 같아서는 일당백(一當百)으로 아기를 낳고도 싶은 욕망에 한없이 꿈은 풍선처럼 부풀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은 나와는 얘기할 틈도 없다며 이 초조한 늙은 여인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 혼자 바쁘게 달리고만 있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이 갈피를 못 잡는 사이에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세월은 급류에 휘말려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남들이 흉보는 게 대순가,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다. 나의 혼과 정성으로 잉태해 보자. 나는 마음을 다잡고, 주눅들지 않게 자존심을 가지고 태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부지런히 책방을 드나들며 좋은 책을 사 나르고, 태아에게 좋다면 인내를 요하는 고전음악도 끈질기게 들어보고, 사색하랴 독서하랴 하루가 그야말로 금쪽 같은 시간이었다. 한 일은 너무 많고, 또 남이 알세라 몰래몰래 태교를 하자니 고달파서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까부라진다. 그러나 남모르는 은근한 스릴과 희망 또한 샘솟듯, 신명나는 삶이었다.
시간은 쏜살같다는 말처럼 부득부득 출산일이 가까워 오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했다. 이 나이에 행여 조산이 되는 것은 아닐까, 조급해 하지 말자고 마음 달래며 출산일을 기다렸다. 노심초사하는 늙은 산모가 딱했던지 삼신할매는 예정일을 꽉 채워, 아기를 세상으로 내보내 주셨다. 쉰 일곱의 노산이니 그 산고야 말해 무엇하리. 그러나 고통에 비해 나의 기쁨은 너무 컸다. 이 나이에 아이를 얻었다니…….
그 숱한 나날들의 입덧과 산고가 모두 씻은 듯 사라졌다. 나는 먼저 아이의 손, 발 그리고 차례로 온몸을 확인했다. 아기는 있을 것 다 갖춘 정상아였다. 우선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차차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살피니 세상에 다시없이 소중한 나의 생명이었다.
세상에 제 새끼 귀엽지 않은 동물이 있을까. 나만 둘도 없는 옥동자를 얻은 것 같아, 주위 사람도 아랑곳없이 푼수 없는 어미가 되어갔다. 만나는 사람마다 늦자식 자랑에 영락없는 팔불출이다. 그러니까 쉰 일곱 가을에 나는 첫아기의 이름을 '수필'이라 지어서 출생신고를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아기가 끔찍이 자랑스러웠다. 아기를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랴 싶어 용기가 샘솟고 마구 신명이 났다. 정말 어디 한 곳 나무랄 데 없이 잘 생겼다 싶었다. 그런데 차츰 날이 갈수록 내 아이가 그리 잘난 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 속에 섞인 내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그렇게 잘난 녀석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성이 뚜렷한 녀석도 못되었다. 그저 불구만 면한 평범한 아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라 한이 없는 것인가. 나는 슬그머니 노욕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이왕지사 늦게라도 시작한 출산이다 둘째, 셋째인들 못 낳을손가. 한시라도 더 늙기 전에 낳아 보자고 결심했다. 이번에야말로 개성이 뚜렷한 아기를 낳아 보자 마음먹고는 둘째를, 얼굴이 아름답고 심성이 착한 여아가 갖고 싶어 셋째를, 아니 씩씩하고 늠름한 대장부이기를 빌며 넷째를, 심각한 함렛 형의 매력을 그리며 다섯째를 ……하며 줄대며 낳았다. 욕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여 일 년을 지내고 보니, 대추나무에 연 결리듯, 자그마치 이 책 저 책에 여남은 편이나 '수필'을 선보이게 되었다. 가난한 흥부집 자식들처럼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한 주제에 욕심만 끝간데 없이 줄줄이 알사탕처럼 낳아 놓았다. 생각하면 한심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세상에 어미된 자는 모두가 제 자식 잘난 착각에 산다. 대통령이 되리라, 판검사가 되리라, 박사될 것이라 하고 어미 욕심껏 아이에게 기대를 건다. 추호도 자기 뱃속에서 자기가 만든 만큼의 아이, 즉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은 까맣게 잊는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다.
지구는 날로 인구가 넘쳐 폭발 직전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이 나이에 줄줄이 굴비 두름처럼 엮어 내놓는 욕심을 자성해 본다.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많고 많은 글들이 홍수처럼 넘친다. 이 많은 글들을 누가 다 읽어 낼 것인가? 물론 독자에게 피와 살이 되는 훌륭한 글이 더 많은 줄은 안다. 그러나 개중에는 시간이 아까워 짜증나게 하는 글도 많이 있다.
만약에 내가 낳은 내 글들이 독자에게 득이 되지 못하고, 별 볼일 없이 시간만 빼앗는 글이 된다면, 나는 무엇으로 독자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할 것인가. 죄치고는 너무나 큰 죄일 것이 분명하다. 남에게서 존경받고 싶어 쓰는 글이라면 그 글은 위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칭찬 받고 싶어 쓰는 글이라면 지식으로 개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 받고 싶어 쓰는 글이라면 연지 곤지 찍어 붙인 얼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존경받고 싶은, 사랑받고 싶은, 칭찬받고 싶은 욕망을 버린 후에, 빈 마음으로 욕심 없이 진솔하게 쓰는 글일 때, 비로소 독자들은 그 글을 진정 사랑하고 아낄 것이다. 어쩌면 좋은가. 붓을 놓자 생각하니 내 삶이 죽어지는 것 같고, 된 글을 쓰자니 역부족이고……. '백 사람이 한번씩이 아니라, 한 사람이 백 번 읽혀지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시인 발레리의 소원이다.
나 또한 일당백인 아들 하나쯤 갖고 싶은 소망을 하느님께 간절히 기구한다면 욕심 버리라고 꾸중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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